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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주 이야기28 '올해 여름 휴가 계획은 어떻게 되나요?'

  • 작성자 관리자
  • 등록일 2021.07.05
  • 조회수 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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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주 이야기28 '올해 여름 휴가 계획은 어떻게 되나요?'
<이번 주 원주 클라우드는 클라우드 게시판에 띄운 주제에 남겨주신 댓글들로 키워드를 뽑았습니다.>
참여해주신 분들: 은비, 김민지, 유한솔, 준수, 유리, 강병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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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딘가 떠나지 못하더라도, 휴가]

지난해 동료가 진행한 프로젝트에 참가했습니다. ‘원-피스’라는 이름으로, 글, 그림, 디자인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는 예술인들이 모여 ‘원주(won)의 조각(piece)들’을 담아보는 프로젝트였어요. 첫 번째 담아낸 조각은 ‘여름’이었습니다. 원주의 여름에 얽힌 추억을 열심히 더듬어 보았지만 선뜻 떠오르는 게 없어서, 결국 여름에 태어난 옛 친구와의 이야기를 두서 없이 적어내렸죠. 제 기억력이 고약한 탓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다른 도시에 있었던 기억이 더 강렬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여름은 휴가의 계절이니까요.

휴가라는 주제로 클라우드에 모인 단어들에는 어느 때보다 다른 도시의 이름이 많이 등장합니다. 대부분 이미 여행지로 익숙한 이름들이에요. 기대감에 가득찬 댓글들을 보고 있노라니 몇 가지 공통점이 보입니다.

첫번째는 모두 ‘물’이 있다는 것. 물놀이를 즐기기 좋은 가평의 빠지(barge), 멀리 여수 밤바다까지, 모두 바다나 강, 호수를 끼고 있습니다. 원주에서 나고 자란 저도 돌이켜 보면 대부분의 여름 휴가를 바다에서 보낸 것 같아요. 어린 시절 가족들과는 삼척 임원에 자주 갔었고, 친구들과는 거제도나 인천의 신도·시도·모도, 충남 보령의 외연도처럼 멀리 있는 섬을 찾아가곤 했습니다. 어느 장마철에는 진도 팽목항에도 다녀왔고요.

미국심리학회(APA)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휴가에는 스트레스를 완화하는 효과가 있는데, 이는 일상 환경으로부터 멀어지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실제로 글로벌 여행 업체인 익스피디아에서 전 세계 19개국 직장인 1만 1,144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유급 휴가 사용 현황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90% 이상이 휴가를 통해 심신이 안정되며, 스트레스와 불안이 해소된다고 답변했습니다. 휴가의 가장 중요한 이유는 역시 일상에서의 탈피인 셈이죠. 익숙한 산을 떠나 강으로 바다로, 역시 원주는 산의 도시인 모양입니다.

두 번째 공통점은 ‘음식’입니다. 군산 유명 중국집의 고추짜장, 여행지의 맛집…. 클라우드에서도 음식에 관한 낱말을 만나볼 수 있었습니다. 예로부터 먹성으로 명성을 떨치고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에서 ‘먹방’이라는 장르를 개척한 민족답게, 알차게 휴가를 보내겠다는 기대에는 맛있는 음식도 빼놓을 수 없겠죠.

수십년 전 신문에는 ‘휴가 음식 준비하는 법’으로 찌개·조림·볶음 양념 따위를 미리 준비하고 채소를 손질해 비닐팩에 소분하라는 식의 조언이 기사로 실려 있곤 했습니다. 주부 커뮤니티 등지에서는 여전히 휴가철을 앞두고 먹거리 장만에 대한 고민글이 올라오곤 합니다만, 먹거리도 정보도 넘쳐나는 요즘은 바야흐로 ‘맛집’의 시대입니다. 익스피디아에서 20-30대 한국인 30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 결과에 따르면 여행지 선정에 미식을 고려한다는 응답이 80%, 다섯 명 중 네 명에 달합니다. 특히 응답자의 58%는 가보고 싶은 식당을 중심으로 여행 동선을 계획해본 적이 있다고 답변했고, 1시간 이상의 대기 시간을 감수한 경우도 35%나 되더군요. 교묘한 바이럴 마케팅을 피해 진짜 맛집을 판별하는 기술도 날로 발전하고 있는데 최근에는 해당 지역 공무원 업무추진비 목록에서 빈번히 간 식당을 확인하라거나, 네비게이션 어플리케이션에서 평점보다 즐겨찾기 저장 수를 확인하라는 ‘꿀팁’이 유명한 듯합니다.

코로나19와 기나긴 장마 때문에 지난해는 여름도 여름답지 않고, 휴가도 휴가답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올해도 팬데믹과 기후위기는 변함없이 우리의 일상을 위협하고 있죠. 그래서인지 클라우드에서도 해외여행은 언감생심이고, 익숙한 단어들이 많이 엿보입니다. 여행 대신 에어컨 빵빵한 실내, 소확행, 금대리의 백숙, 계곡물에 담가 둔 수박, 가까운 곳. 코로나19 시대, 이런 추세를 나타내는 신조어도 등장했습니다. 이른바 ‘스테이케이션(staycation)’인데요. 머문다는 뜻의 ‘stay’와 휴가라는 뜻의 ‘vacation’이 더해진 합성어로, 여행 대신 집 가까운 곳에서 편안히 보내는 형태의 휴가를 뜻합니다. 저도 지난해엔 가족들과 뮤지엄 산에 방문하는 걸로 휴가를 대신했으니, 스테이케이션을 보냈다고 해야 할까요.

휴가의 ‘원조’는 프랑스라고 할 수 있습니다. 1919년 베르사유 조약에서 노동자들에게 주 1회 이상의 휴식을 보장한다는 개념이 등장했고, 1936년 마티뇽 합의에서 연간 2주의 유급휴가가 의무화되었거든요. 프랑스어로 휴가는 바캉스(vacance)라고 하는데, 이는 ‘자유’라는 뜻의 라틴어 바카티오(vacatio)에서 유래한 단어입니다.

자유로워지는 데에 물리적 거리는 중요하지 않겠죠. 호캉스나 스테이케이션 같은 그럴싸한 신조어를 붙이지 않더라도, 반복되는 일상에 거리를 둘 수 있다면 그 자체가 곧 휴가가 될 겁니다. 휴대폰을 하루 정도 끈다거나, 별러 왔던 식당에서 오랜만에 만난 친구와 근사한 한 끼를 할 수도 있을 거고요. 올 여름 어딘가 떠나지 못하더라도, 모두가 편안하고 즐거운 휴가를 보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새보미야 | 당신의 생각보다 훨씬 더 ______한 사람. 프로 백수라 불리곤 하는 프리랜서로, 주로 글을 쓰고 책을 만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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