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 원주 클라우드는 클라우드 게시판에 띄운 주제에 남겨주신 댓글들로 키워드를 뽑았습니다.>
참여해주신 분들: 간지규, 김현국, 가영, 김미라, 권수진, 김민지, 연이, 무민, 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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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열릴 축제를 기대하며]
올봄에 플리마켓을 열려고 했습니다. 이름은 ‘레코드 어 먼스(record a month)’. 작업실 인근, 원도심의 몇몇 가게들이 함께 모여 매달 행사를 여는 거였습니다. 원데이클래스를 열고, 영화 상영과 공연도 열어 작은 축제처럼 만들 생각이었죠. 민화 공방의 작가님이 지도를 그리고 문화공간의 디자이너님이 포스터와 현수막을 만들었습니다. 가게들이 위치한 로데오 거리는 1980년대 ‘호떡골목’으로 유명했기 때문에, 제가 ‘옛 호떡골목 가게들의 한 달’이라는 카피를 곁들였고요. 행사가 잘 자리잡으면 점점 범위를 넓히고, 겨울 무렵에 호떡을 만들어 팔아도 재미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시절을 기억하는 동네 어르신들이 찾아와 추억을 되새길 수도 있게요. 그러나 애석하게도 옛 호떡골목의 플리마켓은 딱 한 번 열린 것이 전부입니다. 코로나19의 여파로 연기와 취소를 거듭하다 보니 그렇게 되었어요. 이번 달에도 역시 열리지 못할 것 같습니다.
코로나19로 일상의 많은 부분에 변화가 있었지만, 그중에 가장 큰 타격이 있는 곳이 바로 ‘축제’가 아닐까 합니다. 한국인사이트연구소에서 SNS 빅데이터를 분석한 바에 따르면, 2019년 상반기 214만 건 언급되던 ‘축제’라는 단어는 코로나19가 터지며 2020년 상반기 107만 건으로 절반이 줄어들었다고 합니다. 축제와 관련된 상위 10개의 키워드 역시 ‘행사’, ‘공연’, ‘지역’, ‘참여’ 등에서 ‘못한다’, ‘가능하다’, ‘모르다’ 등으로 완전히 바뀌었고요. 지난해 9월 말에 보고된 바에 따르면, 문화체육관광부에서 지원을 받는 전국 지역 축제 중 97.4%가 취소되거나 연기된 상태였다고 합니다.
코로나19의 여파는 해를 넘기고 계절을 넘긴 2021년 가을까지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확진자 급증으로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에서 이번 달 열리는 지역 축제의 취소·연기 또는 비대면 전환 개최를 권고했거든요. 원주 최대 규모 축제인 원주다이내믹댄싱카니발의 메인 콘텐츠는 11월 중으로 연기되었고 이미 한 차례 일정이 밀린 원주옥상영화제는 또다시 오프라인 상영이 연기, 온라인으로만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10월 내내 열릴 예정이었던 원주시 문학의 달 기념행사도 모두 온라인으로 전환되었습니다. 비단 이번 달뿐만이 아닙니다. 많은 지역 축제들이 팬데믹을 거치며 비대면·온라인으로의 전환을 꾀했습니다. 단순히 먹고 마시는 축제에서 양질의 콘텐츠에 집중하는 축제로 패러다임을 변화하려는 노력도 엿보이고요. 팬데믹 이후를 기약하며 전격적으로 휴식을 택한 축제도 많습니다. 27회째를 맞이한 원주국제걷기대회도 일찌감치 취소됐죠.
클라우드에 모인 단어들을 보니 우리가 얼마나 축제에 목말라 있었는지 느껴집니다. 저마다 원하는 소재는 다르지만, 관통하는 느낌은 완연히 비슷하더군요. 사람들 구경, 동아리, 온 가족, 함께… 여러 명이 함께 어울리는 마당으로서의 축제 이미지 말입니다. 프랑스의 사회학자 에밀 뒤르켐(Émile Durkheim)은 축제가 ‘사회적 통합을 위해 기능’한다고 규정했죠. 축제는 결국 타인과의 접촉을 빼놓고 성립할 수 없는 단어일 겁니다.
클라우드에는 재즈·할로윈·캠핑 등 특색 있는 축제에 대한 언급도 있었지만, 한편 그보다 일상적인 단어가 좀 더 눈에 띄더군요. 먹거리, 맥주, 음식… 그러고 보면 그 동안 우리나라의 축제에 대해 너무 먹고 마시는 데에만 치중한다는 비판이 종종 있기도 했죠. ‘카니발 이론’으로 널리 알려진 러시아의 사상가 미하일 바흐친(Михаил Бахтин)은 축제가 ‘비일상적인’ ‘전도 현상’을 통해 상생과 공존을 발견한다고 설명한 바 있습니다. 팬데믹 이후로 사람들과 웃고 떠들며 먹고 마시는 행동조차 비일상의 영역이 되어버린 건 아닐까 싶어요. 먹고 마실 수만 있어도 충분히 만족스러운 축제가 될 것 같습니다. 어서 코로나19가 끝나고, 다시 잔치를 즐길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참, 제가 원하는 축제에 대해서 이야기하며 마무리를 하려고 합니다. 저는 몇 년 전부터 ‘통맥축제’를 강력히 밀고(?) 있습니다. 원주는 반세기의 역사를 가진, 통닭의 원조급 도시거든요. 치킨이 들어오기 전인 1970년대 전국을 풍미했던 원주 통닭의 역사를 기리기 위해 ‘치맥’이 아니라 꼭 ‘통맥’이어야 합니다. 원주 통닭 지도를 만들어 대명원과 태장동에서 인증 도장을 찍고, ‘원주식 통닭’을 만들고 있는 전국 방방곡곡의 통닭집 사장님들이 모여 세계 제일 원주 통닭 대회를 열고, 원주 통닭과 잘 어울리는 지역 브루어리의 맥주를 시민 판정단이 투표로 선정하는 거예요. 통닭을 좋아하는 작가들이 영감을 얻어 만든 작품을 전시하고, 통닭 모양 파우치나 통닭 향수가 절찬리에 판매되고요. 아이들은 ‘액체괴물’처럼 튀김 반죽으로 손장난을 하고, 힐링이 필요한 참가자들은 빗소리 대신 통닭을 튀기는 소리 ASMR을 들으며 쉬어갈 수도 있겠죠. 원주 통닭을 순례하러 온 낯선 사람들과 거리낌 없이 건배를 나눌 수 있는, 그런 축제! 즐겁지 않은가요. 언젠가 열릴 통맥축제 때 연락을 주신다면, 제가 기꺼이 맥주 한잔을 사겠습니다. :)
새보미야 | 당신의 생각보다 훨씬 더 ______한 사람. 프로 백수라 불리곤 하는 프리랜서로, 주로 글을 쓰고 책을 만듭니다.
참여해주신 분들: 간지규, 김현국, 가영, 김미라, 권수진, 김민지, 연이, 무민, 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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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열릴 축제를 기대하며]
올봄에 플리마켓을 열려고 했습니다. 이름은 ‘레코드 어 먼스(record a month)’. 작업실 인근, 원도심의 몇몇 가게들이 함께 모여 매달 행사를 여는 거였습니다. 원데이클래스를 열고, 영화 상영과 공연도 열어 작은 축제처럼 만들 생각이었죠. 민화 공방의 작가님이 지도를 그리고 문화공간의 디자이너님이 포스터와 현수막을 만들었습니다. 가게들이 위치한 로데오 거리는 1980년대 ‘호떡골목’으로 유명했기 때문에, 제가 ‘옛 호떡골목 가게들의 한 달’이라는 카피를 곁들였고요. 행사가 잘 자리잡으면 점점 범위를 넓히고, 겨울 무렵에 호떡을 만들어 팔아도 재미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시절을 기억하는 동네 어르신들이 찾아와 추억을 되새길 수도 있게요. 그러나 애석하게도 옛 호떡골목의 플리마켓은 딱 한 번 열린 것이 전부입니다. 코로나19의 여파로 연기와 취소를 거듭하다 보니 그렇게 되었어요. 이번 달에도 역시 열리지 못할 것 같습니다.
코로나19로 일상의 많은 부분에 변화가 있었지만, 그중에 가장 큰 타격이 있는 곳이 바로 ‘축제’가 아닐까 합니다. 한국인사이트연구소에서 SNS 빅데이터를 분석한 바에 따르면, 2019년 상반기 214만 건 언급되던 ‘축제’라는 단어는 코로나19가 터지며 2020년 상반기 107만 건으로 절반이 줄어들었다고 합니다. 축제와 관련된 상위 10개의 키워드 역시 ‘행사’, ‘공연’, ‘지역’, ‘참여’ 등에서 ‘못한다’, ‘가능하다’, ‘모르다’ 등으로 완전히 바뀌었고요. 지난해 9월 말에 보고된 바에 따르면, 문화체육관광부에서 지원을 받는 전국 지역 축제 중 97.4%가 취소되거나 연기된 상태였다고 합니다.
코로나19의 여파는 해를 넘기고 계절을 넘긴 2021년 가을까지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확진자 급증으로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에서 이번 달 열리는 지역 축제의 취소·연기 또는 비대면 전환 개최를 권고했거든요. 원주 최대 규모 축제인 원주다이내믹댄싱카니발의 메인 콘텐츠는 11월 중으로 연기되었고 이미 한 차례 일정이 밀린 원주옥상영화제는 또다시 오프라인 상영이 연기, 온라인으로만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10월 내내 열릴 예정이었던 원주시 문학의 달 기념행사도 모두 온라인으로 전환되었습니다. 비단 이번 달뿐만이 아닙니다. 많은 지역 축제들이 팬데믹을 거치며 비대면·온라인으로의 전환을 꾀했습니다. 단순히 먹고 마시는 축제에서 양질의 콘텐츠에 집중하는 축제로 패러다임을 변화하려는 노력도 엿보이고요. 팬데믹 이후를 기약하며 전격적으로 휴식을 택한 축제도 많습니다. 27회째를 맞이한 원주국제걷기대회도 일찌감치 취소됐죠.
클라우드에 모인 단어들을 보니 우리가 얼마나 축제에 목말라 있었는지 느껴집니다. 저마다 원하는 소재는 다르지만, 관통하는 느낌은 완연히 비슷하더군요. 사람들 구경, 동아리, 온 가족, 함께… 여러 명이 함께 어울리는 마당으로서의 축제 이미지 말입니다. 프랑스의 사회학자 에밀 뒤르켐(Émile Durkheim)은 축제가 ‘사회적 통합을 위해 기능’한다고 규정했죠. 축제는 결국 타인과의 접촉을 빼놓고 성립할 수 없는 단어일 겁니다.
클라우드에는 재즈·할로윈·캠핑 등 특색 있는 축제에 대한 언급도 있었지만, 한편 그보다 일상적인 단어가 좀 더 눈에 띄더군요. 먹거리, 맥주, 음식… 그러고 보면 그 동안 우리나라의 축제에 대해 너무 먹고 마시는 데에만 치중한다는 비판이 종종 있기도 했죠. ‘카니발 이론’으로 널리 알려진 러시아의 사상가 미하일 바흐친(Михаил Бахтин)은 축제가 ‘비일상적인’ ‘전도 현상’을 통해 상생과 공존을 발견한다고 설명한 바 있습니다. 팬데믹 이후로 사람들과 웃고 떠들며 먹고 마시는 행동조차 비일상의 영역이 되어버린 건 아닐까 싶어요. 먹고 마실 수만 있어도 충분히 만족스러운 축제가 될 것 같습니다. 어서 코로나19가 끝나고, 다시 잔치를 즐길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참, 제가 원하는 축제에 대해서 이야기하며 마무리를 하려고 합니다. 저는 몇 년 전부터 ‘통맥축제’를 강력히 밀고(?) 있습니다. 원주는 반세기의 역사를 가진, 통닭의 원조급 도시거든요. 치킨이 들어오기 전인 1970년대 전국을 풍미했던 원주 통닭의 역사를 기리기 위해 ‘치맥’이 아니라 꼭 ‘통맥’이어야 합니다. 원주 통닭 지도를 만들어 대명원과 태장동에서 인증 도장을 찍고, ‘원주식 통닭’을 만들고 있는 전국 방방곡곡의 통닭집 사장님들이 모여 세계 제일 원주 통닭 대회를 열고, 원주 통닭과 잘 어울리는 지역 브루어리의 맥주를 시민 판정단이 투표로 선정하는 거예요. 통닭을 좋아하는 작가들이 영감을 얻어 만든 작품을 전시하고, 통닭 모양 파우치나 통닭 향수가 절찬리에 판매되고요. 아이들은 ‘액체괴물’처럼 튀김 반죽으로 손장난을 하고, 힐링이 필요한 참가자들은 빗소리 대신 통닭을 튀기는 소리 ASMR을 들으며 쉬어갈 수도 있겠죠. 원주 통닭을 순례하러 온 낯선 사람들과 거리낌 없이 건배를 나눌 수 있는, 그런 축제! 즐겁지 않은가요. 언젠가 열릴 통맥축제 때 연락을 주신다면, 제가 기꺼이 맥주 한잔을 사겠습니다. :)
새보미야 | 당신의 생각보다 훨씬 더 ______한 사람. 프로 백수라 불리곤 하는 프리랜서로, 주로 글을 쓰고 책을 만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