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 원주 클라우드는 클라우드 게시판에 띄운 주제에 남겨주신 댓글들로 키워드를 뽑았습니다.>
참여해주신 분들: 연,콩,미니,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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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후’가 동계올림픽에 임하는 자세]
베이징 동계올림픽이 막 폐막했습니다. 심각한 팬데믹 시국인데다, 하계올림픽이 도쿄에서 열리고 1년도 지나지 않아 개최된 탓에, 사실은 올림픽이 개막을 했는지조차 모르고 있었어요. 개최국 중국의 소수 민족 탄압에 항의하는 의미에서 개인적으로 베이징 동계올림픽을 보이콧하려 했는데, 쇼트트랙의 어이없는 편파판정 뉴스를 보고 화가 난 나머지 몰두하다 정신을 차려 보니 어느새 다른 종목들까지도 두루 챙겨보고 있더군요…. 다들 비슷했던 모양인지, 클라우드에서도 쇼트트랙이 먼저 눈에 띄네요. 경기뿐만 아니라 쇼트트랙 대표팀의 맏형이자 주장인 곽윤기 선수의 전방위적(?) 활약 덕분에 특히 즐거운 며칠이었습니다.
클라우드에서 쇼트트랙과 함께 비슷하게 언급된 종목은 피겨스케이팅입니다. 댓글 달아주신 분들께 반가움을! 저도 피겨스케이팅을 좋아하거든요.
어린 시절 밤늦게 TV 채널을 돌리는데 피겨스케이팅 경기가 나온 적이 있습니다. 규칙도 선수 이름도 모른 채 경이로운 마음으로 그 화면을 봤던 기억이 나요. 피겨스케이팅이라는 스포츠를 처음 인지한 순간이었죠. 세계선수권 다섯 차례 우승에 빛나는 미셸 콴(Michelle Kwan)이 우리나라 뉴스에도 종종 등장하고, 미국 내셔널선수권대회에서 한국계 2세인 남나리가 2위에 오르며 돌풍을 일으켰던 그즈음입니다.
설렁설렁 스포츠뉴스만 챙겨보던 제가 본격적으로 피겨스케이팅에 빠져든 것은 2007년 3월의 일입니다. 날짜까지 정확히 알고 있어요. 일본에서 열린 세계선수권대회, 김연아가 ‘록산느의 탱고’로 쇼트프로그램 세계신기록을 갈아치우며 센세이셔널하게 데뷔한 날이었습니다. 이후 저는 김연아의 모든 경기를 실시간으로 챙겨보며 ‘피겨 팬’의 길을 걷게 됐죠.
피겨스케이팅은 동계올림픽의 꽃이라고 불립니다. 예술성이 중요한 종목이라서 그렇기도 하겠지만, 정확히는 관록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피겨스케이팅은 1908년 런던 하계올림픽에서부터 정식 종목으로 채택됐거든요. 최초의 동계올림픽이 1924년에 열렸으니, 동계올림픽보다도 더 근본(?)이 있는 셈이죠.
초창기 피겨스케이팅은 스케이트 날로 얼음판 위에서 일정한 도형(figure)을 그리는 스포츠였습니다. 그래서 피겨스케이팅이라는 이름도 생긴 것이고요. 지금 피겨스케이팅(싱글)은 쇼트프로그램·프리스케이팅 두 종목으로 나뉘어 치러지지만, 1990년까지만 해도 도형을 그리는 컴펄서리 피겨(Compulsory figures)까지 세 종목을 합해 승부를 가렸어요.
피겨스케이팅은 빙상 위에서 음악에 맞추어 점프, 스핀, 필드 동작 등 다양한 기술을 사용, 연기를 펼치는 스포츠입니다. 김연아가 역사상 가장 위대한 스케이터로 꼽히는 이유가 완벽한 기술에 빼어난 예술성이 더해진, 말 그대로 토털패키지(total pakage)기 때문이라는 점은 다들 잘 알고 계실 겁니다.
기술적인 측면에서 살펴보자면 피겨스케이팅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점프’라고 할 수 있을 텐데요. 1882년 노르웨이의 악셀 폴슨이라는 남자 선수가 최초로 착지에 성공한 이래, 피겨스케이팅 점프는 꾸준히 발전을 거듭했습니다. 점프는 도약 방향과 스케이트 날 사용 방식에 따라 여섯 종류로 구분되었고, 회전수 역시 차츰 증가해왔죠.
종류를 구분하지 않고 회전수로만 본다면 더블(2회전) 점프는 1925년, 트리플(3회전) 점프는 1952년, 쿼드러플(4회전) 점프는 1988년 최초로 수행되었습니다. 여자 선수의 경우에서는 1920년 싱글 점프가, 1936년 더블 점프가, 1962년 트리플 점프가, 2002년 쿼드러플 점프가 최초로 수행되었고요. 한 바퀴에서 네 바퀴까지 발전하는 데에 약 한 세기가 걸린 겁니다.
다른 점프들보다 반 바퀴를 더 돌아서 난이도가 높은 악셀 점프의 경우 남자가 1978년, 여자가 1988년 트리플 악셀에 최초로 성공했지만 40년이 지난 아직도 쿼드러플 악셀에 성공한 사람은 없어요. 체공 시간과 각운동량(회전체의 운동량)을 고려했을 때 쿼드러플 악셀(4.5회전) 이상, 퀸터플(5회전) 점프는 불가능한 영역으로 여겨집니다.
남자 피겨스케이팅의 경우 2010년대 초반부터 안정적으로 쿼드러플 점프를 뛰는 선수들이 서서리 등장했고, 2017년 최초로 5종의 쿼드러플 점프를 모두 뛰는 선수가 나타났습니다. 바로 올해 피겨스케이팅 남자 싱글에서 금메달을 딴 미국의 네이선 첸 선수예요.
그런데 2010년대 후반, 여자 피겨스케이팅에서 갑작스레 안정적으로 쿼드러플 점프를 뛰는 선수들이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특출난 한두 명이 아니라 여러 명이, 그것도 러시아의 예테리 투트베리제(Этери Тутберидзе)라는 단 한 명의 코치 휘하에서요. 이들의 프로그램 구성은 최상위권 남자 선수들과도 경쟁할 수 있을 정도입니다. 아무리 피겨스케이팅 부츠가 경량화되었다고 한들, 기본적인 근력의 차이가 있잖아요. 지금까지 여자 선수들의 점프 발전사가 남자 선수들보다 10년에서 20년 늦었다는 점을 떠올리면 참 괴상한 일이죠. 더구나 러시아는 국가 주도 대규모 도핑 스캔들을 몇 차례나 일으켜온 나라입니다. 때문에 국제 스포츠대회 출전 자격도 올해 연말까지 박탈당한 상태고요.
미심쩍은 발전은 결국 이번 베이징 동계올림픽 최악의 이슈와 연결되었습니다. 피겨스케이팅 여자 싱글에서 유력한 금메달리스트 후보였던 러시아 카밀라 발리예바(Ками́ла Вали́ева)의 도핑이 드러난 겁니다. 그러나 상황은 점입가경이었습니다. 도핑 선수의 메달이 박탈되지도 징계가 주어지지도 않고, 남은 경기에 그대로 참가하게 하는 일이 벌어졌어요. 경기를 해설하던 곽민정 피겨스케이팅 전 국가대표가 발리예바의 프리스케이팅 도중 ‘나는 운동을 괜히 했나 보다’며 울먹이는 것을 듣고 어찌나 속이 상하던지요.
게다가 발리예바는 도핑 적발 이후 열린 프리스케이팅 경기에서 일부러 넘어지며 스스로 등수를 낮추었다는 의혹마저 사고 있습니다. 도핑 논란으로 시상식이 미뤄진다는 방침에, 러시아 대표팀 차원에서 다른 러시아 선수들이라도 제때 메달을 받을 수 있게끔 꼬리 자르기를 시도했다는 의심이죠.
사실 피겨스케이팅은 쇼트트랙 이상으로 편파판정이 유서 깊고 심한 종목입니다. 전통적인 강대국 선수들은 관성적으로 감점이 덜 되고, 가산점이나 프로그램 구성 점수를 높게 받습니다. 예의 러시아 선수들 역시 점프 회전수 부족 등 부정확한 수행에도 지나치게 높은 평가를 받아 왔죠. 채점 과정에서 교묘하게 점수를 조절하는 탓에 순위 ‘줄 세우기’가 되기도 부지기수입니다. 2014년 소치 동계올림픽에서 김연아가 금메달을 강탈당한 사건이 편파판정 줄 세우기의 대표적인 사례였고요. 이번 베이징 동계올림픽에서는 여자 선수 최초로 5차례 쿼드러플 점프를 수행한 러시아의 알렉산드라 트루소바(Александра Трусова)가 은메달이 확정되자 판정에 불복하며 ‘당신들은 다 알고 있었어!’, ‘이딴 스포츠 정말 싫어!’라고 한참이나 울부짖는 모습이 고스란히 전파를 타기도 했습니다.
스포츠의 공정함을 끝없이 의심하게 되는 이런 와중에도, 굴하지 않고 훌륭한 경기를 펼치며 6위·9위로 꿈의 무대를 마무리한 유영, 김예림 선수가 너무 대견하고 또 자랑스럽습니다(도핑 의심 선수를 제외하고 편파판정까지 고려하면 메달권·5위권!).
또 불모지라 불렸던 우리나라 남자 피겨스케이팅 판을 개척, 올림픽 링크를 아름답게 빛낸 차준환, 이시형 선수에게도 자부심을 느낍니다. 클라우드에 ‘요즘 차준환 선수 경기 보는 맛으로 산다’는 댓글이 있었는데, 정말로 공감이 됐어요. 차준환 선수는 ‘인생 경기’를 펼치며 올림픽 최종 5위, 우리나라 남자 피겨스케이팅 역대 최고 성적을 거뒀습니다. 5위였던 선수가 그다음 올림픽에서 금메달리스트에 올랐던 몇 차례의 남자 피겨스케이팅 역사를 떠올리면, 4년 뒤에 열릴 밀라노·코르티나담페초 동계올림픽도 사뭇 기대하게 되네요.
비록 부조리한 일들에 지치기도 했지만, 스포츠 정신을 추구하고 인간의 한계에 도전하는 수많은 선수들을 보며 행복하고 벅차오르는 며칠이었습니다. 국적을 불문하고, 결과를 떠나, 모든 정정당당한 선수들에게 존경과 응원을 보냅니다.
그리고, 억울한 상황을 지켜보면서도 그 종목을 포기하지 않고 굳건히 선수들을 지지하는 ‘덕후’들에게도 연대와 애정을 보내며, 칼럼을 맺습니다. 다음 올림픽에서 만나요!
새보미야 | 당신의 생각보다 훨씬 더 ______한 사람. 프로 백수라 불리곤 하는 프리랜서로, 주로 글을 쓰고 책을 만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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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후’가 동계올림픽에 임하는 자세]
베이징 동계올림픽이 막 폐막했습니다. 심각한 팬데믹 시국인데다, 하계올림픽이 도쿄에서 열리고 1년도 지나지 않아 개최된 탓에, 사실은 올림픽이 개막을 했는지조차 모르고 있었어요. 개최국 중국의 소수 민족 탄압에 항의하는 의미에서 개인적으로 베이징 동계올림픽을 보이콧하려 했는데, 쇼트트랙의 어이없는 편파판정 뉴스를 보고 화가 난 나머지 몰두하다 정신을 차려 보니 어느새 다른 종목들까지도 두루 챙겨보고 있더군요…. 다들 비슷했던 모양인지, 클라우드에서도 쇼트트랙이 먼저 눈에 띄네요. 경기뿐만 아니라 쇼트트랙 대표팀의 맏형이자 주장인 곽윤기 선수의 전방위적(?) 활약 덕분에 특히 즐거운 며칠이었습니다.
클라우드에서 쇼트트랙과 함께 비슷하게 언급된 종목은 피겨스케이팅입니다. 댓글 달아주신 분들께 반가움을! 저도 피겨스케이팅을 좋아하거든요.
어린 시절 밤늦게 TV 채널을 돌리는데 피겨스케이팅 경기가 나온 적이 있습니다. 규칙도 선수 이름도 모른 채 경이로운 마음으로 그 화면을 봤던 기억이 나요. 피겨스케이팅이라는 스포츠를 처음 인지한 순간이었죠. 세계선수권 다섯 차례 우승에 빛나는 미셸 콴(Michelle Kwan)이 우리나라 뉴스에도 종종 등장하고, 미국 내셔널선수권대회에서 한국계 2세인 남나리가 2위에 오르며 돌풍을 일으켰던 그즈음입니다.
설렁설렁 스포츠뉴스만 챙겨보던 제가 본격적으로 피겨스케이팅에 빠져든 것은 2007년 3월의 일입니다. 날짜까지 정확히 알고 있어요. 일본에서 열린 세계선수권대회, 김연아가 ‘록산느의 탱고’로 쇼트프로그램 세계신기록을 갈아치우며 센세이셔널하게 데뷔한 날이었습니다. 이후 저는 김연아의 모든 경기를 실시간으로 챙겨보며 ‘피겨 팬’의 길을 걷게 됐죠.
피겨스케이팅은 동계올림픽의 꽃이라고 불립니다. 예술성이 중요한 종목이라서 그렇기도 하겠지만, 정확히는 관록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피겨스케이팅은 1908년 런던 하계올림픽에서부터 정식 종목으로 채택됐거든요. 최초의 동계올림픽이 1924년에 열렸으니, 동계올림픽보다도 더 근본(?)이 있는 셈이죠.
초창기 피겨스케이팅은 스케이트 날로 얼음판 위에서 일정한 도형(figure)을 그리는 스포츠였습니다. 그래서 피겨스케이팅이라는 이름도 생긴 것이고요. 지금 피겨스케이팅(싱글)은 쇼트프로그램·프리스케이팅 두 종목으로 나뉘어 치러지지만, 1990년까지만 해도 도형을 그리는 컴펄서리 피겨(Compulsory figures)까지 세 종목을 합해 승부를 가렸어요.
피겨스케이팅은 빙상 위에서 음악에 맞추어 점프, 스핀, 필드 동작 등 다양한 기술을 사용, 연기를 펼치는 스포츠입니다. 김연아가 역사상 가장 위대한 스케이터로 꼽히는 이유가 완벽한 기술에 빼어난 예술성이 더해진, 말 그대로 토털패키지(total pakage)기 때문이라는 점은 다들 잘 알고 계실 겁니다.
기술적인 측면에서 살펴보자면 피겨스케이팅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점프’라고 할 수 있을 텐데요. 1882년 노르웨이의 악셀 폴슨이라는 남자 선수가 최초로 착지에 성공한 이래, 피겨스케이팅 점프는 꾸준히 발전을 거듭했습니다. 점프는 도약 방향과 스케이트 날 사용 방식에 따라 여섯 종류로 구분되었고, 회전수 역시 차츰 증가해왔죠.
종류를 구분하지 않고 회전수로만 본다면 더블(2회전) 점프는 1925년, 트리플(3회전) 점프는 1952년, 쿼드러플(4회전) 점프는 1988년 최초로 수행되었습니다. 여자 선수의 경우에서는 1920년 싱글 점프가, 1936년 더블 점프가, 1962년 트리플 점프가, 2002년 쿼드러플 점프가 최초로 수행되었고요. 한 바퀴에서 네 바퀴까지 발전하는 데에 약 한 세기가 걸린 겁니다.
다른 점프들보다 반 바퀴를 더 돌아서 난이도가 높은 악셀 점프의 경우 남자가 1978년, 여자가 1988년 트리플 악셀에 최초로 성공했지만 40년이 지난 아직도 쿼드러플 악셀에 성공한 사람은 없어요. 체공 시간과 각운동량(회전체의 운동량)을 고려했을 때 쿼드러플 악셀(4.5회전) 이상, 퀸터플(5회전) 점프는 불가능한 영역으로 여겨집니다.
남자 피겨스케이팅의 경우 2010년대 초반부터 안정적으로 쿼드러플 점프를 뛰는 선수들이 서서리 등장했고, 2017년 최초로 5종의 쿼드러플 점프를 모두 뛰는 선수가 나타났습니다. 바로 올해 피겨스케이팅 남자 싱글에서 금메달을 딴 미국의 네이선 첸 선수예요.
그런데 2010년대 후반, 여자 피겨스케이팅에서 갑작스레 안정적으로 쿼드러플 점프를 뛰는 선수들이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특출난 한두 명이 아니라 여러 명이, 그것도 러시아의 예테리 투트베리제(Этери Тутберидзе)라는 단 한 명의 코치 휘하에서요. 이들의 프로그램 구성은 최상위권 남자 선수들과도 경쟁할 수 있을 정도입니다. 아무리 피겨스케이팅 부츠가 경량화되었다고 한들, 기본적인 근력의 차이가 있잖아요. 지금까지 여자 선수들의 점프 발전사가 남자 선수들보다 10년에서 20년 늦었다는 점을 떠올리면 참 괴상한 일이죠. 더구나 러시아는 국가 주도 대규모 도핑 스캔들을 몇 차례나 일으켜온 나라입니다. 때문에 국제 스포츠대회 출전 자격도 올해 연말까지 박탈당한 상태고요.
미심쩍은 발전은 결국 이번 베이징 동계올림픽 최악의 이슈와 연결되었습니다. 피겨스케이팅 여자 싱글에서 유력한 금메달리스트 후보였던 러시아 카밀라 발리예바(Ками́ла Вали́ева)의 도핑이 드러난 겁니다. 그러나 상황은 점입가경이었습니다. 도핑 선수의 메달이 박탈되지도 징계가 주어지지도 않고, 남은 경기에 그대로 참가하게 하는 일이 벌어졌어요. 경기를 해설하던 곽민정 피겨스케이팅 전 국가대표가 발리예바의 프리스케이팅 도중 ‘나는 운동을 괜히 했나 보다’며 울먹이는 것을 듣고 어찌나 속이 상하던지요.
게다가 발리예바는 도핑 적발 이후 열린 프리스케이팅 경기에서 일부러 넘어지며 스스로 등수를 낮추었다는 의혹마저 사고 있습니다. 도핑 논란으로 시상식이 미뤄진다는 방침에, 러시아 대표팀 차원에서 다른 러시아 선수들이라도 제때 메달을 받을 수 있게끔 꼬리 자르기를 시도했다는 의심이죠.
사실 피겨스케이팅은 쇼트트랙 이상으로 편파판정이 유서 깊고 심한 종목입니다. 전통적인 강대국 선수들은 관성적으로 감점이 덜 되고, 가산점이나 프로그램 구성 점수를 높게 받습니다. 예의 러시아 선수들 역시 점프 회전수 부족 등 부정확한 수행에도 지나치게 높은 평가를 받아 왔죠. 채점 과정에서 교묘하게 점수를 조절하는 탓에 순위 ‘줄 세우기’가 되기도 부지기수입니다. 2014년 소치 동계올림픽에서 김연아가 금메달을 강탈당한 사건이 편파판정 줄 세우기의 대표적인 사례였고요. 이번 베이징 동계올림픽에서는 여자 선수 최초로 5차례 쿼드러플 점프를 수행한 러시아의 알렉산드라 트루소바(Александра Трусова)가 은메달이 확정되자 판정에 불복하며 ‘당신들은 다 알고 있었어!’, ‘이딴 스포츠 정말 싫어!’라고 한참이나 울부짖는 모습이 고스란히 전파를 타기도 했습니다.
스포츠의 공정함을 끝없이 의심하게 되는 이런 와중에도, 굴하지 않고 훌륭한 경기를 펼치며 6위·9위로 꿈의 무대를 마무리한 유영, 김예림 선수가 너무 대견하고 또 자랑스럽습니다(도핑 의심 선수를 제외하고 편파판정까지 고려하면 메달권·5위권!).
또 불모지라 불렸던 우리나라 남자 피겨스케이팅 판을 개척, 올림픽 링크를 아름답게 빛낸 차준환, 이시형 선수에게도 자부심을 느낍니다. 클라우드에 ‘요즘 차준환 선수 경기 보는 맛으로 산다’는 댓글이 있었는데, 정말로 공감이 됐어요. 차준환 선수는 ‘인생 경기’를 펼치며 올림픽 최종 5위, 우리나라 남자 피겨스케이팅 역대 최고 성적을 거뒀습니다. 5위였던 선수가 그다음 올림픽에서 금메달리스트에 올랐던 몇 차례의 남자 피겨스케이팅 역사를 떠올리면, 4년 뒤에 열릴 밀라노·코르티나담페초 동계올림픽도 사뭇 기대하게 되네요.
비록 부조리한 일들에 지치기도 했지만, 스포츠 정신을 추구하고 인간의 한계에 도전하는 수많은 선수들을 보며 행복하고 벅차오르는 며칠이었습니다. 국적을 불문하고, 결과를 떠나, 모든 정정당당한 선수들에게 존경과 응원을 보냅니다.
그리고, 억울한 상황을 지켜보면서도 그 종목을 포기하지 않고 굳건히 선수들을 지지하는 ‘덕후’들에게도 연대와 애정을 보내며, 칼럼을 맺습니다. 다음 올림픽에서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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