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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주이야기68 '원주의 문화를 느끼려면 어디로?'

  • 작성자 관리자
  • 등록일 2022.04.11
  • 조회수 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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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주이야기68 '원주의 문화를 느끼려면 어디로?'
<이번 주 원주 클라우드는 클라우드 게시판에 띄운 주제에 남겨주신 댓글들로 키워드를 뽑았습니다.>
참여해주신 분들: 김지영, 지원, 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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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곁]

제주에서는 바다 냄새와 말똥 냄새, 춘천에서는 안개 냄새가 난다는 이번 주 칼럼 주제의 발문을 읽고 내심 반가웠습니다. 제주의 냄새라니! (물론 제주에 간다고 어디서든 말똥 냄새가 나는 것은 아니지만) 잠시 마음에 담아둔 고향의 빛과 공기를 떠올려 봅니다. 강한 기류를 헤치고 불안하게 활주로에 안착합니다. 그렇게 육지에 닿고서도 그곳을 몇 바퀴 더 빙빙 돌아 드디어 비행기에서 내리는 순간, 우리는 가장 먼저 바람을 느끼게 됩니다. 그 바람은 바다로부터 습도와 소금기를 머금은 채 먼 곳에서부터 따라온 제주에 대한 기대와 동경을 후려치며 서둘러 짐 챙기러 가라고 재촉할 것입니다. 제주만의 환대 방식이랄까. 나는 그 바람이 좋습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제주만의 제주다운 모든 것들을 좋아하고 또 아름답다 말합니다. 하지만 제주는 지금 어딘가 잘못 가도 한참 잘못 가고 있는 중입니다.

사실 제주공항과 활주로가 있는 이곳은 과거 (당연하게도) 사람들이 살던 마을, ‘몰래물(제주시 도두동)’이 있었습니다. 1941년, 일제강점기 당시 군사적 목적으로 정뜨르* 비행장이 건설되면서 ‘몰래물’ 주민들은 마을에서 쫓겨나게 되었습니다. 바로 옆 마을(새몰래물)로 이주했던 주민들은 40년이 흐른 뒤 정뜨르 비행장이 현 제주 국제공항으로 확장되며 다시금 쫓겨났고 또 얼마 뒤 남아있던 땅마저 하수처리장이 만들어지며 총 세 번의 이주를 하게 되었습니다. 이로써 ‘몰래물’마을은 사라지고 주민들은 인근 마을로 뿔뿔이 흩어져 새로운 4개의 마을을 만들어 살아왔습니다. 제성마을(제주시 연동)은 마을을 만들면서 주변에 벚꽃나무를 심었습니다. 수십 년에 걸친 철거의 아픔을 끌어안고 다시금 마을을 만들어 살아가려는 희망과 의지를 새긴 것이죠. 하지만 최근 가로수 정비를 이유로 40년간 주민들과 함께한 벚꽃나무 12그루가 잘리게 되었습니다. 제주 시청은 벌목 이후 주민들의 허망함 앞에 같은 수종의 나무를 40그루 심어주겠다는 말을 하며 이들의 슬픔에 공감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여줬습니다.

이에 문학평론가 김동현은 최근 기고**를 통해 제주시의 태도를 비판하면서 철학자 박동환이 에서 설명하는 ‘영원’의 개념을 언급했습니다. ‘그것(=영원)은 모든 살아있는 것들의 몸속 깊은 곳에 간직하고 있는 기억이자, 현재의 시간에서 끊임없이 반복되는 영원의 지현이다. 그의 사유는 기억은 인간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사실과 함께 모든 생물이 우주 빅뱅의 순간부터 지금까지 지구 역사의 전 과정을 실체적 몸으로 기억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원주만의 문화를 느낄 수 있는 공간에 대한 글에 앞서 제주 어느 마을의 벚꽃나무 벌목 사건을 먼저 다룬 것은 최근 원인동 재개발을 앞두고 진행되는 아카이빙에 참여하면서 고민하고 있는 지점과 맞닿아있기 때문입니다. 나는 원주 토박이도 아니거나 와 이곳에서 살아온 시간이나 알고 있는 정보와 지식도 아주 보잘것없습니다. 그런 제가 떠올릴 수 있는 것은 이 아카이빙에 참여하는 사람들의 마음이 무엇일까? 하는 것이었습니다. 역사와 기록은 떼려야 뗄 수 없죠. 무엇인가 사라지기 전에, 적당히 객관적인 관점과 거리를 갖고, 공식적으로 약속된 언어와 방식을 통해 기록된 기록물이 각각의 형태에 따른 보존 매뉴얼을 따라 보관된다면 아무리 시간이 흐르더라도 언제고 다시 찾아볼 수 있습니다. 국가는 스스로가 공인한 가치 있다고 여겨지는 중요한 기록물에 대해서는 (조선왕조실록이랄지 팔만대장경 같은) 그 보존과 관리에 큰 힘을 들입니다.

하지만 터전을 빼앗기며 살아온 제성마을 사람들은 나무를 심었습니다. 땅을 파고 뿌리를 흙으로 덮으며 할머니-어머니 세대부터 반복해서 쫓겨나며 살아온 자신들의 역사를 함께 심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나무가 자라면서 그들의 새로운 삶의 터전에서 살아갈 삶의 희망도 함께 자라나길 바랐을 것입니다. 누구나 이해하거나 알아차릴 수 있는 글도, 말도, 이미지도 아니지만 그저 살아 있고, 살아 있어서 앞으로도 함께 살아갈 생명에 과거와 미래를 함께 새긴 것일 테지요. 그래서 생각합니다. 제주 시청의 공무원들은 결코 이해할 수 없었고 알아차릴 수 없었을 그들의 역사를. 기억을. 바로 옆 마을에 살면서 나도 수없이 지나쳤을 그 벚꽃나무들을. 일 년 중 딱 한 달 꽃잎을 흩뿌리고는 오래도록 긴 무관심을 견디던 벚꽃나무들을.

제성마을이 제주 전근대 역사의 한 단면을 품고 있는 것과 같이 원인동의 재개발지구도 원주의 역사를 품고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사람들의 이야기를 품고 있을 테고요. 이미 결정된 재개발을 멈춰야 한다거나 막아내자는 말은 아닙니다. 세상엔 되돌릴 수 없는 일들이 너무나 많고 벌어지는 일들을 모두 감당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겨우 몇 그루’라고 말하는 제주 시청의 무심함보다는 한 그루의 나무라도 살려보겠다고 베어진 나무뿌리를 다시 캐내고, 부러진 가지를 수습해 화분에 다시 심는 마을 사람들의 마음을 아프게도 닮고 싶을 뿐입니다. 이 마음은 아마 곧 사라질 원인동의 골목과 슈퍼와 동네를 남겨놓으려는 사람들의 마음과 서로 포개어지겠지요.

원주라는 지역을 느끼려면, 어디로 가야 할까요? 원주 다운 것, 원주스러운 것은 무엇일까요? 여기에 대한 저의 답은 ‘사랑하는 모든 것과 열심히 이별하고, 충분히 애도할 수 있는 마음을 가진 사람들의 곁’입니다. 우리가 한사코 마주하게 될 그 많은 헤어짐을 준비하는 마음의 곁. 그곳이 지금도, 앞으로도 원주의 시간과 삶의 냄새가 밴 장소가 아닐까요?


*뜨르 : 들의 제주어
**기억을 자를 권리는 없다… ‘겨우 몇 그루’가 아니다>_제주의 소리


날콩이 | 강원도에 살래 온 섬따이 이우다. 자주 보게 마씀~ (강원도에 이주한 섬 아이 입니다. 자주 보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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