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스트레스는 무엇인가요?]
자주 사용하는 외래어 1위가 스트레스(stress)라는 통계를 본 적이 있습니다. 그만큼 스트레스는 우리가 입에 달고 사는 말입니다. ‘스트레스를 푸는 나만의 방법’이라는 이번 주제도 그 자체로 한 가지 사실을 전제합니다. 모두가 스트레스를 받는다는 것. 이미 받은 스트레스를 어떻게 해결하는지 묻는 것이죠.
‘나만의 방법’들은 언뜻 보면 다양하나, 또 찬찬히 보면 닮아있기도 합니다. 불닭볶음면 같은 매운 음식으로 풀기도 하고, 잠시라도 다 잊고 싶어 무작정 잠으로 도피합니다. 향초를 켜고 책을 읽고, 음악을 듣거나 피아노를 연주하기도 하고, 아무 생각 없이 영화에 빠지곤 하죠. 운동이나 명상이라는, 굉장히 모범적인 답도 있고요. 수다 삼매경으로 쌓인 스트레스를 날려버리곤 하는데, 요즘엔 자유롭게 친구 만나는 것도 여의치 않으니 밤낮으로 게임에 몰두합니다. 요리, 청소, 방 정리, 마트 장보기 등 생산적인 일로 몸을 쓰면서 부정적인 생각에서 탈출하기도 하고요. 혹은 스트레스에 의한 지름신 증상이 나타나 하루에도 몇 개씩 설레며 택배 상자를 뜯습니다. (그런데 왜 ‘만취’는 없는 거죠? ‘맥주 한 잔’을 간신히 찾아냈을 뿐입니다만.)
이처럼 일상에서 가볍게 받고 툭툭 쳐낼 수 있는 정도의 스트레스는 스스로 관리하며 사는 데 큰 문제는 없습니다. 그리고 적당한 긴장을 주는 스트레스는 오히려 성취와 동기를 끌어올리는 활력이 되기도 하고요. 또 위급할 때 나를 구해주도록 설계된 게 스트레스라고도 하죠. ‘너, 지금 이 상황에 계속 너를 두어도 괜찮겠어?’, ‘이 관계를 이런 식으로 계속 유지해도 괜찮겠어?’ 일종의 신호, 경고라고나 할까요.
다만 한 가지 궁금한 건 이런 겁니다. 스트레스를 현대인의 고질병, 만병의 근원이라고 하는데, 지금 시대는 누구나 스트레스를 받으며 사는 게 당연한 걸까요? 어쩔 수 없는 일일까요? 왜 스트레스 해소법, 관리법 정보는 많은데 ‘스트레스 없이 사는 법’은 별로 못 봤을까요? 우리는 왜 ‘반응’으로서의 스트레스만큼 ‘요인’으로서의 스트레스는 얘기하지 않을까요? 그러니까 사실 더 궁금한 건, 무엇이 스트레스가 되느냐는 겁니다.
뭔가 세상에는 내가 모르는, 스트레스보다 훨씬 무시무시한 욕망의 비밀 같은 게 있는 걸까요? 언젠가는 ‘스트레스 없이 사는 나만의 방법’ 같은 것도 공유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바랍니다.
매버릭 | 로컬 칼럼니스트, 재야의 아키비스트. 그때나 지금이나 거기서나 여기서나, 소속 없이 직책 없이 경계를 넘나드는 깍두기. 사는 만큼 말하고 말한 대로 살기 위해, 쓸데없이 근질거리는 입을 오늘도 꿰매고 싶은 사람.
자주 사용하는 외래어 1위가 스트레스(stress)라는 통계를 본 적이 있습니다. 그만큼 스트레스는 우리가 입에 달고 사는 말입니다. ‘스트레스를 푸는 나만의 방법’이라는 이번 주제도 그 자체로 한 가지 사실을 전제합니다. 모두가 스트레스를 받는다는 것. 이미 받은 스트레스를 어떻게 해결하는지 묻는 것이죠.
‘나만의 방법’들은 언뜻 보면 다양하나, 또 찬찬히 보면 닮아있기도 합니다. 불닭볶음면 같은 매운 음식으로 풀기도 하고, 잠시라도 다 잊고 싶어 무작정 잠으로 도피합니다. 향초를 켜고 책을 읽고, 음악을 듣거나 피아노를 연주하기도 하고, 아무 생각 없이 영화에 빠지곤 하죠. 운동이나 명상이라는, 굉장히 모범적인 답도 있고요. 수다 삼매경으로 쌓인 스트레스를 날려버리곤 하는데, 요즘엔 자유롭게 친구 만나는 것도 여의치 않으니 밤낮으로 게임에 몰두합니다. 요리, 청소, 방 정리, 마트 장보기 등 생산적인 일로 몸을 쓰면서 부정적인 생각에서 탈출하기도 하고요. 혹은 스트레스에 의한 지름신 증상이 나타나 하루에도 몇 개씩 설레며 택배 상자를 뜯습니다. (그런데 왜 ‘만취’는 없는 거죠? ‘맥주 한 잔’을 간신히 찾아냈을 뿐입니다만.)
이처럼 일상에서 가볍게 받고 툭툭 쳐낼 수 있는 정도의 스트레스는 스스로 관리하며 사는 데 큰 문제는 없습니다. 그리고 적당한 긴장을 주는 스트레스는 오히려 성취와 동기를 끌어올리는 활력이 되기도 하고요. 또 위급할 때 나를 구해주도록 설계된 게 스트레스라고도 하죠. ‘너, 지금 이 상황에 계속 너를 두어도 괜찮겠어?’, ‘이 관계를 이런 식으로 계속 유지해도 괜찮겠어?’ 일종의 신호, 경고라고나 할까요.
다만 한 가지 궁금한 건 이런 겁니다. 스트레스를 현대인의 고질병, 만병의 근원이라고 하는데, 지금 시대는 누구나 스트레스를 받으며 사는 게 당연한 걸까요? 어쩔 수 없는 일일까요? 왜 스트레스 해소법, 관리법 정보는 많은데 ‘스트레스 없이 사는 법’은 별로 못 봤을까요? 우리는 왜 ‘반응’으로서의 스트레스만큼 ‘요인’으로서의 스트레스는 얘기하지 않을까요? 그러니까 사실 더 궁금한 건, 무엇이 스트레스가 되느냐는 겁니다.
뭔가 세상에는 내가 모르는, 스트레스보다 훨씬 무시무시한 욕망의 비밀 같은 게 있는 걸까요? 언젠가는 ‘스트레스 없이 사는 나만의 방법’ 같은 것도 공유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바랍니다.
매버릭 | 로컬 칼럼니스트, 재야의 아키비스트. 그때나 지금이나 거기서나 여기서나, 소속 없이 직책 없이 경계를 넘나드는 깍두기. 사는 만큼 말하고 말한 대로 살기 위해, 쓸데없이 근질거리는 입을 오늘도 꿰매고 싶은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