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개 너머 사는 내 이웃]
이웃과의 소통에 관해 나눈 얘기들을 살펴보니, ‘먼저 인사하기’가 기본이군요. 아파트 엘리베이터가 이웃과 자주 마주치는 교차 공간이고요. 요즘엔 지역 커뮤니티도 온라인이 주요 소통 창구가 되나 봅니다. 좀 더 적극적인 방법으로는 친한 동네 주민들과 가벼운 식사 모임을 하기도 하네요. 하지만 이웃과 친밀한 관계를 맺는 것에 부담을 느끼고 어려움을 겪기도 합니다. ‘꼬마 이웃과의 스몰토크’도 있었는데, 때가 때이니만큼 이것도 조심스럽습니다. 코로나 상황이 아니더라도 이웃과의 왕래가 일상다반사가 되기엔 여러모로 시대가 바뀌기도 했을 테고요.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데, 요즘 같은 환경에선 쉽지 않은 일입니다.
한편 제 상황은 이렇습니다. 아파트는 살아본 적도 없고, 엘리베이터는 마트 갈 때나 타보고, 아이를 키우지 않아 딱히 속할 커뮤니티도 없고, 집을 들고나며 만나는 생명체가 사람보다는 동물이 더 많다 보니, 거주 환경을 기준으로 ‘소통’할 ‘이웃’ 자체가 빈약합니다. 고백하자면, 스스로 만든 환경이기도 하고 나에게 어울리는 일상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다고 이웃이 필요 없다는 뜻은 아닙니다. 다만 그 이웃이 같은 엘리베이터를 타거나 벽을 사이에 두거나 오가다 마주치지 않을 뿐이죠.
고개 너머 한 이웃이 살고 있습니다. 나이 차이도 크게 나고 사는 방식도 주거 형태도 일상의 생김새도 다르지만, 서로의 이웃으로서 종종 일상을 나누곤 합니다. 작년엔 여러모로 상황상 왕래가 뜸하긴 했지만요. 그 집 부부가 여의치 않을 때는 대신 아이의 어린이집 하원을 돕기도 하고, 같이 산책도 하고 놀기도 하는데요. 아이를 키우지 않는 저로서는 한 아이의 성장을 가까이에서 지켜볼 수 있는 이웃이 있다는 것도 즐거운 선물입니다. 마트에서 1+1 득템을 하면 사이좋게 하나씩 나누는 것도 함께 장보기의 소소한 기쁨이고요. 먼저 원주라는 도시에 정착한 이주민 선배로서 이런저런 정보를 전해주기도 하고, 보답(?)으로 어쩌다 그 집에서 소화하기에 넘치는 식재료가 생기면 우리 집 냉장고가 기분 좋게 채워지죠. 각자 집에서 대청소를 하다가 서로에게 더 필요해 보이는 물건들은 따로 정리해 선뜻 내어주기도 합니다.
같은 주거 지역 내에서 가까이 사는 이웃과의 소통도 물론 필요한 일이고 고민해야겠지만, 각자의 생활 방식과 환경의 특수성에 따라 일상을 나누고 도움을 주고받을 수 있는, 내게 맞는 이웃을 스스로 만들며 함께 소통하는 방법도 더 생각해보면 어떨까요?
매버릭 | 로컬 칼럼니스트, 재야의 아키비스트. 그때나 지금이나 거기서나 여기서나, 소속 없이 직책 없이 경계를 넘나드는 깍두기. 사는 만큼 말하고 말한 대로 살기 위해, 쓸데없이 근질거리는 입을 오늘도 꿰매고 싶은 사람.
이웃과의 소통에 관해 나눈 얘기들을 살펴보니, ‘먼저 인사하기’가 기본이군요. 아파트 엘리베이터가 이웃과 자주 마주치는 교차 공간이고요. 요즘엔 지역 커뮤니티도 온라인이 주요 소통 창구가 되나 봅니다. 좀 더 적극적인 방법으로는 친한 동네 주민들과 가벼운 식사 모임을 하기도 하네요. 하지만 이웃과 친밀한 관계를 맺는 것에 부담을 느끼고 어려움을 겪기도 합니다. ‘꼬마 이웃과의 스몰토크’도 있었는데, 때가 때이니만큼 이것도 조심스럽습니다. 코로나 상황이 아니더라도 이웃과의 왕래가 일상다반사가 되기엔 여러모로 시대가 바뀌기도 했을 테고요.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데, 요즘 같은 환경에선 쉽지 않은 일입니다.
한편 제 상황은 이렇습니다. 아파트는 살아본 적도 없고, 엘리베이터는 마트 갈 때나 타보고, 아이를 키우지 않아 딱히 속할 커뮤니티도 없고, 집을 들고나며 만나는 생명체가 사람보다는 동물이 더 많다 보니, 거주 환경을 기준으로 ‘소통’할 ‘이웃’ 자체가 빈약합니다. 고백하자면, 스스로 만든 환경이기도 하고 나에게 어울리는 일상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다고 이웃이 필요 없다는 뜻은 아닙니다. 다만 그 이웃이 같은 엘리베이터를 타거나 벽을 사이에 두거나 오가다 마주치지 않을 뿐이죠.
고개 너머 한 이웃이 살고 있습니다. 나이 차이도 크게 나고 사는 방식도 주거 형태도 일상의 생김새도 다르지만, 서로의 이웃으로서 종종 일상을 나누곤 합니다. 작년엔 여러모로 상황상 왕래가 뜸하긴 했지만요. 그 집 부부가 여의치 않을 때는 대신 아이의 어린이집 하원을 돕기도 하고, 같이 산책도 하고 놀기도 하는데요. 아이를 키우지 않는 저로서는 한 아이의 성장을 가까이에서 지켜볼 수 있는 이웃이 있다는 것도 즐거운 선물입니다. 마트에서 1+1 득템을 하면 사이좋게 하나씩 나누는 것도 함께 장보기의 소소한 기쁨이고요. 먼저 원주라는 도시에 정착한 이주민 선배로서 이런저런 정보를 전해주기도 하고, 보답(?)으로 어쩌다 그 집에서 소화하기에 넘치는 식재료가 생기면 우리 집 냉장고가 기분 좋게 채워지죠. 각자 집에서 대청소를 하다가 서로에게 더 필요해 보이는 물건들은 따로 정리해 선뜻 내어주기도 합니다.
같은 주거 지역 내에서 가까이 사는 이웃과의 소통도 물론 필요한 일이고 고민해야겠지만, 각자의 생활 방식과 환경의 특수성에 따라 일상을 나누고 도움을 주고받을 수 있는, 내게 맞는 이웃을 스스로 만들며 함께 소통하는 방법도 더 생각해보면 어떨까요?
매버릭 | 로컬 칼럼니스트, 재야의 아키비스트. 그때나 지금이나 거기서나 여기서나, 소속 없이 직책 없이 경계를 넘나드는 깍두기. 사는 만큼 말하고 말한 대로 살기 위해, 쓸데없이 근질거리는 입을 오늘도 꿰매고 싶은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