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 원주 클라우드는 김유미님께서 올려주신 주제로 선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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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거나, 어린이였던]
어린이가 아니게 된 지도 벌써 십수 년이 지났건만, 여전히 어린이날이라는 단어엔 가슴이 설레고 맙니다. 학교에 가지 않아도 되는 빨간 날, 녹음이 짙푸르러진 맑고 청량한 5월의 날씨. 클라우드로 건져 올린 단어들에서도 행복이 느껴집니다. 가족들과 함께 맛있는 것을 먹고, 가까이는 치악체육관에서부터 멀리는 놀이공원이나 동물원까지 놀러도 가고, 재밌는 선물을 받기도 했다고요. 소중한 추억들입니다. 저 역시 치악체육관 잔디밭에 돗자리를 펴고 도시락을 먹는, 어린이날의 가족사진을 몇 장 갖고 있어요.
그러다 댓글 하나가 눈에 밟혔습니다. ‘왜 난 어린이날의 기억이 없는 걸까요?’라는 한 줄이었죠. 단순히 기억이 잘 나지 않았는지도 모르지만, 실제로 모든 어린이들의 어린이날이 행복한 추억만으로 가득하지는 않을 겁니다. 세상은 종종 아주 험난한 곳이니까요. 불우한 가족사를 가졌다거나, 궁핍한 경제 사정 때문일 수도 있고요. 이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어린이·청소년의 주관적 행복지수는 유서 깊게 OECD 국가들 중 최하위권을 유지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게다가 혐오와 차별은 항상 약한 사람들에게 먼저 당도하는 법입니다. 얼마 전 지인의 추천을 받고 가본 카페 출입문에는 ‘노키즈존’이라는 글귀가 떡하니 붙어 있었어요. 한때 어린이였던 사람으로서 저는 몹시 상처를 받고 말았습니다. ‘노키즈존’ 같은 적극적인 차별뿐만 아니라, 최근에는 ‘○린이’처럼 얄궂은 표현도 자주 눈에 띄어 신경이 쓰여요. ‘주린이(주식+어린이)’, ‘헬린이(헬스+어린이)’, ‘요린이(요리+어린이)’처럼 어떤 분야에서 수준이나 단계가 낮은 사람을 일컫는 용도로 인터넷 등지에서 유행처럼 사용되고 있는 단어 말입니다.
청소년 페미니스트 네트워크 ‘위티(WeTee)’에서는 올해 어린이날을 맞아 ‘미숙해도 괜찮은 세상이 필요하다(https://han.gl/IWb75)’는 제목의 논평을 냈습니다. 어린이를 부족한 존재라 여기는 인식뿐만 아니라 “‘미성숙함’, ‘부족함’, ‘불완전함’, ‘감정적’ 등 흔히 소수자의 특성으로 설명되는 속성들이 사회에서 어떻게 받아들여지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고민이 필요하며, “더 많은 불완전함이 존중받을 수 있는 사회”를 지향해야 한다고요. 깊이 공감이 되더군요.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어린이날이 제정된 것은 1922년입니다. 나라의 미래인 어린이들의 인권을 존중하고 민족의식을 고취시키기 위해서였죠. 이듬해인 1923년 어린이날 기념식에서는 세계 최초의 어린이 인권 선언문이기도 한 ‘어린이선언문’이 발표되었습니다. 어린이선언문은 첫 번째 항목에서 ‘그들(어린이)에게 완전한 인격적 예우를 허하게 하라’고 적고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 사회는 어린이를 존중하고 있을까요?
어린이날을 이야기하는 것은, 어린이가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를 다시금 아로새기기 위해서겠지요. 그리고 이건 결국 우리의 미래가 어떤 모습일지 그려나가는 밑바탕인지도 모릅니다. 우리들은 모두 어린이거나, 어린이였던 존재니까요.
새보미야 | 당신의 생각보다 훨씬 더 ______한 사람. 프로 백수라 불리곤 하는 프리랜서로, 주로 글을 쓰고 책을 만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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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거나, 어린이였던]
어린이가 아니게 된 지도 벌써 십수 년이 지났건만, 여전히 어린이날이라는 단어엔 가슴이 설레고 맙니다. 학교에 가지 않아도 되는 빨간 날, 녹음이 짙푸르러진 맑고 청량한 5월의 날씨. 클라우드로 건져 올린 단어들에서도 행복이 느껴집니다. 가족들과 함께 맛있는 것을 먹고, 가까이는 치악체육관에서부터 멀리는 놀이공원이나 동물원까지 놀러도 가고, 재밌는 선물을 받기도 했다고요. 소중한 추억들입니다. 저 역시 치악체육관 잔디밭에 돗자리를 펴고 도시락을 먹는, 어린이날의 가족사진을 몇 장 갖고 있어요.
그러다 댓글 하나가 눈에 밟혔습니다. ‘왜 난 어린이날의 기억이 없는 걸까요?’라는 한 줄이었죠. 단순히 기억이 잘 나지 않았는지도 모르지만, 실제로 모든 어린이들의 어린이날이 행복한 추억만으로 가득하지는 않을 겁니다. 세상은 종종 아주 험난한 곳이니까요. 불우한 가족사를 가졌다거나, 궁핍한 경제 사정 때문일 수도 있고요. 이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어린이·청소년의 주관적 행복지수는 유서 깊게 OECD 국가들 중 최하위권을 유지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게다가 혐오와 차별은 항상 약한 사람들에게 먼저 당도하는 법입니다. 얼마 전 지인의 추천을 받고 가본 카페 출입문에는 ‘노키즈존’이라는 글귀가 떡하니 붙어 있었어요. 한때 어린이였던 사람으로서 저는 몹시 상처를 받고 말았습니다. ‘노키즈존’ 같은 적극적인 차별뿐만 아니라, 최근에는 ‘○린이’처럼 얄궂은 표현도 자주 눈에 띄어 신경이 쓰여요. ‘주린이(주식+어린이)’, ‘헬린이(헬스+어린이)’, ‘요린이(요리+어린이)’처럼 어떤 분야에서 수준이나 단계가 낮은 사람을 일컫는 용도로 인터넷 등지에서 유행처럼 사용되고 있는 단어 말입니다.
청소년 페미니스트 네트워크 ‘위티(WeTee)’에서는 올해 어린이날을 맞아 ‘미숙해도 괜찮은 세상이 필요하다(https://han.gl/IWb75)’는 제목의 논평을 냈습니다. 어린이를 부족한 존재라 여기는 인식뿐만 아니라 “‘미성숙함’, ‘부족함’, ‘불완전함’, ‘감정적’ 등 흔히 소수자의 특성으로 설명되는 속성들이 사회에서 어떻게 받아들여지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고민이 필요하며, “더 많은 불완전함이 존중받을 수 있는 사회”를 지향해야 한다고요. 깊이 공감이 되더군요.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어린이날이 제정된 것은 1922년입니다. 나라의 미래인 어린이들의 인권을 존중하고 민족의식을 고취시키기 위해서였죠. 이듬해인 1923년 어린이날 기념식에서는 세계 최초의 어린이 인권 선언문이기도 한 ‘어린이선언문’이 발표되었습니다. 어린이선언문은 첫 번째 항목에서 ‘그들(어린이)에게 완전한 인격적 예우를 허하게 하라’고 적고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 사회는 어린이를 존중하고 있을까요?
어린이날을 이야기하는 것은, 어린이가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를 다시금 아로새기기 위해서겠지요. 그리고 이건 결국 우리의 미래가 어떤 모습일지 그려나가는 밑바탕인지도 모릅니다. 우리들은 모두 어린이거나, 어린이였던 존재니까요.
새보미야 | 당신의 생각보다 훨씬 더 ______한 사람. 프로 백수라 불리곤 하는 프리랜서로, 주로 글을 쓰고 책을 만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