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 원주 클라우드는 클라우드 게시판에 띄운 주제에 남겨주신 댓글들로 키워드를 뽑았습니다.>
참여해주신 분들: 정윤주, 노정훈, MJ, 김민지, 권수진, 유리, 유한솔, 예지, 신지선, 진범, 채원, 은비, 하영
→ 클라우드 게시판 보러가기
[구름 뒤에도 보름달은 있으니]
제가 두 명의 동료와 함께 운영하는 공간이 시내, 로데오거리(옛 호떡골목)에 있습니다. 오늘은 평원로(C도로) 버스정류장에서 하차해 출근을 하려는데 어쩐지 평소와 분위기가 사뭇 다르더군요. 차도는 꽉 막혀 거북이걸음이고, 여느 때보다 많은 사람이 저마다 뭔가를 들고 복잡하게 오가고 있습니다. 생선의 신선도를 자랑하는 상인의 목소리는 유독 쾌활하고, 다듬은 나물이나 실한 햇과일이 쌓인 매대 앞엔 콩나물시루처럼 손님이 모여들었고요. 명절이 코앞으로 다가왔다는 게 실감났습니다. 국민지원금 덕분인지 여느 때보다도 더 활기가 도는 모습에,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라는 말이 떠올랐어요.
한가위의 어원은 ‘큰[한] 가운데[가위]’로 알려져 있습니다. 음력 8월의 보름, 가을의 한가운데로 해석할 수 있죠. 이는 중추절(仲秋節)이라는 명칭과도 닿아 있습니다. 한편 ‘가위’에는 다른 어원도 있어요. 『삼국사기(三國史記)』의 「신라본기(新羅本紀)」에 따르면 신라 제3대 왕인 유리 이사금(儒理尼師今)은 왕녀 두 사람에게 명해 도읍의 여자들을 두 패로 나누어 거느리고 길쌈을 하도록 합니다. 7월 16일 시작된 두레길쌈은 한 달 동안 이어졌고, 8월 보름에는 심사를 해 진 편이 이긴 편에게 사례를 하고 가무와 놀이를 즐겼다고 하는데 이것을 ‘가배(嘉俳)’라고 불렀다고 해요. 가배는 가위를 이두(吏讀)⑴식으로 표기한 한자입니다. 즉 가위라는 말에는 ‘협동 노동을 마친 후 즐기는 날’이라는 뜻이 있는 셈이죠. 이는 한가위라는 명절의 유래를 확인할 수 있는 최초의 기록이기도 합니다.
한가위, 가위, 가배, 가배일, 중추절. 팔월대보름을 지칭하는 여러 이름이 있지만 그중에서도 ‘추석(秋夕)’을 빼놓을 수는 없을 겁니다. 순우리말은 아니지만, 우리나라에서만 쓰는 고유 이름이죠. 추석이라는 단어의 유래는 사서오경(四書五經) 중 하나인 『예기(禮記)』에 등장합니다. ‘조춘일(朝春日) 추석월(秋夕月)’, 봄에는 아침 햇살이 좋고 가을엔 저녁 달빛이 좋다는 뜻이죠.
문득 애국가의 한 소절이 생각납니다. ‘가을 하늘 공활한데 높고 구름 없이’. 저는 지금 옥상에 의자를 꺼내놓고 앉아 이 원고를 쓰고 있는데요. 하늘이 아주 아름답습니다. 특히 해가 넘어갈 무렵이라 더더욱요. 곧 제법 둥글어진 달이 뜨겠죠. 팔월대보름 명절을 일컫는 여러 한자어 가운데에서도 선조들이 ‘가을 저녁’이라는 뜻의 단어를 선택한 것은 퍽 낭만적인 일입니다. 슬슬 한 해의 결실이 맺어지는 계절과 저녁이라는 시간대가 잘 어울리기도 하고요.
매일매일 차고 기우는 달의 모습은 끊임없이 순환하는 생명력과 연결됩니다. 농자천하지대본(農者天下之大本)의 시대에 보름달, 그중에서도 가을 한가운데의 만월은 실한 이삭이나 잘 익은 과일처럼 풍요로운 결실을 상징했고요. 한 해 중 농부들의 마음이 가장 마음이 풍족한 시기, 추석의 보름달을 마주한 마음은 감사와 기대로 가득했을 겁니다. 자연히 이듬해에도 농사가 순조롭기를 빌었겠죠. 제주도 출신인 친구는 선조부터 추석마다 온 친척이 모여 백약이오름에 올라 달맞이를 한다고 하더군요.
기상청에서는 매년 한가위 달맞이 기상정보를 제공합니다. 이번 한가위 월출 시각은 저녁 6시 59분이군요. 그런데 아쉽게도 비 예보가 있네요. 그래도 보름달은 거기 있을 테니 소원을 빌어 봅니다. 오랫동안 삶을 괴롭히고 있는 전염병의 시대가 끝나기를, 나와 우리 가족이 행복하기를요.
⑴ 훈민정음 창제 이전 한국어를 한자로 표기하기 위한 문자 체계. 예를 들어 ‘마당쇠’라는 인명을 ‘馬堂金(말 ‘마’+집 ‘당’+‘쇠’ 금)’으로 음차, 훈차해 표기하는 식이다.
새보미야 | 당신의 생각보다 훨씬 더 ______한 사람. 프로 백수라 불리곤 하는 프리랜서로, 주로 글을 쓰고 책을 만듭니다.
참여해주신 분들: 정윤주, 노정훈, MJ, 김민지, 권수진, 유리, 유한솔, 예지, 신지선, 진범, 채원, 은비, 하영
→ 클라우드 게시판 보러가기
[구름 뒤에도 보름달은 있으니]
제가 두 명의 동료와 함께 운영하는 공간이 시내, 로데오거리(옛 호떡골목)에 있습니다. 오늘은 평원로(C도로) 버스정류장에서 하차해 출근을 하려는데 어쩐지 평소와 분위기가 사뭇 다르더군요. 차도는 꽉 막혀 거북이걸음이고, 여느 때보다 많은 사람이 저마다 뭔가를 들고 복잡하게 오가고 있습니다. 생선의 신선도를 자랑하는 상인의 목소리는 유독 쾌활하고, 다듬은 나물이나 실한 햇과일이 쌓인 매대 앞엔 콩나물시루처럼 손님이 모여들었고요. 명절이 코앞으로 다가왔다는 게 실감났습니다. 국민지원금 덕분인지 여느 때보다도 더 활기가 도는 모습에,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라는 말이 떠올랐어요.
한가위의 어원은 ‘큰[한] 가운데[가위]’로 알려져 있습니다. 음력 8월의 보름, 가을의 한가운데로 해석할 수 있죠. 이는 중추절(仲秋節)이라는 명칭과도 닿아 있습니다. 한편 ‘가위’에는 다른 어원도 있어요. 『삼국사기(三國史記)』의 「신라본기(新羅本紀)」에 따르면 신라 제3대 왕인 유리 이사금(儒理尼師今)은 왕녀 두 사람에게 명해 도읍의 여자들을 두 패로 나누어 거느리고 길쌈을 하도록 합니다. 7월 16일 시작된 두레길쌈은 한 달 동안 이어졌고, 8월 보름에는 심사를 해 진 편이 이긴 편에게 사례를 하고 가무와 놀이를 즐겼다고 하는데 이것을 ‘가배(嘉俳)’라고 불렀다고 해요. 가배는 가위를 이두(吏讀)⑴식으로 표기한 한자입니다. 즉 가위라는 말에는 ‘협동 노동을 마친 후 즐기는 날’이라는 뜻이 있는 셈이죠. 이는 한가위라는 명절의 유래를 확인할 수 있는 최초의 기록이기도 합니다.
한가위, 가위, 가배, 가배일, 중추절. 팔월대보름을 지칭하는 여러 이름이 있지만 그중에서도 ‘추석(秋夕)’을 빼놓을 수는 없을 겁니다. 순우리말은 아니지만, 우리나라에서만 쓰는 고유 이름이죠. 추석이라는 단어의 유래는 사서오경(四書五經) 중 하나인 『예기(禮記)』에 등장합니다. ‘조춘일(朝春日) 추석월(秋夕月)’, 봄에는 아침 햇살이 좋고 가을엔 저녁 달빛이 좋다는 뜻이죠.
문득 애국가의 한 소절이 생각납니다. ‘가을 하늘 공활한데 높고 구름 없이’. 저는 지금 옥상에 의자를 꺼내놓고 앉아 이 원고를 쓰고 있는데요. 하늘이 아주 아름답습니다. 특히 해가 넘어갈 무렵이라 더더욱요. 곧 제법 둥글어진 달이 뜨겠죠. 팔월대보름 명절을 일컫는 여러 한자어 가운데에서도 선조들이 ‘가을 저녁’이라는 뜻의 단어를 선택한 것은 퍽 낭만적인 일입니다. 슬슬 한 해의 결실이 맺어지는 계절과 저녁이라는 시간대가 잘 어울리기도 하고요.
매일매일 차고 기우는 달의 모습은 끊임없이 순환하는 생명력과 연결됩니다. 농자천하지대본(農者天下之大本)의 시대에 보름달, 그중에서도 가을 한가운데의 만월은 실한 이삭이나 잘 익은 과일처럼 풍요로운 결실을 상징했고요. 한 해 중 농부들의 마음이 가장 마음이 풍족한 시기, 추석의 보름달을 마주한 마음은 감사와 기대로 가득했을 겁니다. 자연히 이듬해에도 농사가 순조롭기를 빌었겠죠. 제주도 출신인 친구는 선조부터 추석마다 온 친척이 모여 백약이오름에 올라 달맞이를 한다고 하더군요.
기상청에서는 매년 한가위 달맞이 기상정보를 제공합니다. 이번 한가위 월출 시각은 저녁 6시 59분이군요. 그런데 아쉽게도 비 예보가 있네요. 그래도 보름달은 거기 있을 테니 소원을 빌어 봅니다. 오랫동안 삶을 괴롭히고 있는 전염병의 시대가 끝나기를, 나와 우리 가족이 행복하기를요.
⑴ 훈민정음 창제 이전 한국어를 한자로 표기하기 위한 문자 체계. 예를 들어 ‘마당쇠’라는 인명을 ‘馬堂金(말 ‘마’+집 ‘당’+‘쇠’ 금)’으로 음차, 훈차해 표기하는 식이다.
새보미야 | 당신의 생각보다 훨씬 더 ______한 사람. 프로 백수라 불리곤 하는 프리랜서로, 주로 글을 쓰고 책을 만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