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 원주 클라우드는 클라우드 게시판에 띄운 주제에 남겨주신 댓글들로 키워드를 뽑았습니다.>
참여해주신 분들: 가영, 민, 김민지, 유, 원준, 김민정, 신지선, 유한솔, 유리, 밍, 웅, 권수진, 채요니, 김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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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의 인생 작품 나누기]
저는 활자 세대에 가깝습니다. 집에는 TV가 없고, 넷플릭스 같은 OTT 서비스도 구독하지 않습니다. 유튜브도 거의 보지 않아요. 정보를 얻을 때에도 뉴스나 백과사전을 검색하죠.
자연히 제가 본 드라마는 한 손으로도 꼽을 수 있을 정도입니다. 〈명랑소녀 성공기〉, 〈대장금〉, 〈강남엄마 따라잡기〉, 〈응답하라 1988〉 네 편이 전부네요. 모두 웰메이드였다고 생각하지만, 지금 시점에서 화제로 올리기엔 너무 오래된 것들이죠. 저는 TV 드라마보다 〈내가 그녀를 만났을 때(How I Met Your Mother)〉나 〈빅뱅 이론(The Big Bang Theory)〉처럼 외국 시트콤을 좋아했던 것 같아요. 최근에 흥미롭게 본 시리즈로는 〈빌어먹을 세상 따위(The End of the F***ing World)〉가 있는데, 이것조차 2017년 작품이네요.
이렇듯 매체의 발달사(?)를 따르지 못하고 뒤처져있는 사람이지만, 이야기를 시각화·청각화해 표현해내는 영상의 매력에는 십분 공감합니다. 뚜렷한 묘사와 높은 몰입도, 미장센의 아름다움이나 상징성 같은 것들 말입니다. 글로는 분명 다가갈 수 없는 영역이죠.
그렇다면 어떤 걸 ‘인생’ 영화 혹은 드라마라고 할 수 있을까요? 인생은 ‘사람이 세상을 살아가는 일’ 또는 ‘사람이 살아 있는 기간’을 일컫는 단어입니다.
첫 번째 뜻으로 생각해 보자면, 세상을 살아가는 데에 모종의 영향을 준 것을 인생 영화/드라마로 꼽을 수 있겠네요. 우리는 외부의 자극을 받아들이고, 그것을 소화하고 재구성해 자신을 완성해 나갑니다. 영화나 드라마를 통해 생각이 바뀌거나 취향이 정립되는 경험은 누구나 해봤을 거예요. 크게는 인생의 진로를 결정하기도 하고, 작게는 주인공이 먹는 음식을 따라 먹어볼 수도 있겠죠. 이번 클라우드에는 〈노트북〉을 꼽으며 ‘로맨스를 좋아하지 않았는데 취향이 바뀌었다’는 댓글이 있었는데, 그런 경우가 여기 해당할 겁니다. 저도 어린 시절 본 〈로마의 휴일〉을 ‘첫사랑 같은’ 영화로 손꼽곤 하는데, 이것이 제 ‘로맨스’의 기준점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한편 〈동백꽃 필 무렵〉을 인생 드라마로 꼽은 댓글은 ‘포항에 있는 촬영지를 구경가보’겠다고 덧붙였죠. 영상에서의 감동을 화면 밖의 활동으로 연결시키는 것도 이 경우에 해당할 것 같아요. 저도 〈중경삼림〉을 보고 홍콩 여행을,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를 보고 아이슬란드 여행을 떠났으니 꽤나 영향을 많이 받는 축이라 하겠습니다. 언젠가는 〈포레스트 검프〉처럼 미 대륙을 횡단하고 싶어요.
두 번째 뜻으로 생각해 보자면, 사는 동안 본 것 중 가장 좋았던 것이 인생 영화/드라마라 할 수 있을 거예요. 앞으로 살아갈 날이 많이 남아 있으니, 왕좌는 언제든 바뀔 수 있겠죠. 물론 오래전에 봤던 작품이 시간의 미화로 불가침의 인생 작품이 될 수도, 시간의 풍화 때문에 최근에 봤던 작품이 가장 선명한 명작으로 치고 올라올 수도 있을 겁니다. 문제는 ‘좋다’는 단어가 퍽 주관적이라는 데에 있네요. 물론 사전상의 뜻에 따라 ‘보통 이상의 수준’이라는 점을 충족해야 한다면 어느 정도 외부적 평가도 필요하겠지만, ‘만족할 만’함을 판단하는 기준은 결국 각자에게 달려 있을 겁니다. 댓글에선 〈이터널 선샤인〉, 〈쇼생크 탈출〉, 〈인생은 아름다워〉 같은 제목들 사이로 힐링, 사극(의 장엄함), 감동, 잊지 못함, 기억 같은 단어들이 넘실거립니다. 누군가는 ‘재수 시절에’ 〈첫키스만 50번째〉를, ‘20대 초반에’ 〈인터스텔라〉를 재밌게 봤다고 해주셨죠. 통찰력 있는 댓글이었습니다. 우리네 인생에는 수많은 굴곡이 있으므로, 때마다 와닿는 인생 작품이 달라질 수밖에요. 전 〈이터널 선샤인〉을 재개봉했을 때 봤는데, 아마 이별을 경험하기 전에 봤다면 그렇게 좋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어바웃 타임〉은 한창 짝사랑하던 시기, 상대방과 함께 봐서 더욱 잊지 못할 것 같고요.
앞선 두 뜻을 아울러, 저는 최초의 영향이 가시고 다양한 삶의 변곡점을 지난 후에도 계속해서 다시 찾게 되는 것이야말로 인생 작품이라고 정의를 내려보겠습니다. 앞서 언급한 몇 작품 외에도 이 기준에 맞춰 제 인생 영화를 몇 개 추천해 드리자면, ‘스토리’ 계열에서는 〈미스 리틀 선샤인〉이나 〈거북이는 의외로 빨리 헤엄친다〉, 〈실버라이닝 플레이북〉이 있어요. 지브리 스튜디오의 애니메이션도 빼놓을 수 없죠(단, 〈게드 전기〉는 제외하고!). ‘비주얼’ 계열로는 〈매드 맥스: 분노의 도로〉,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의 사막 추격전, 〈반지의 제왕〉 시리즈가 있습니다. 최근 개봉한 〈듄〉도 앞으로 몇 번은 다시 볼 것 같은 영화입니다.
클라우드의 작품들 중 아직 보지 못한 〈노트북〉을 조만간 보려 합니다. 다른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취향을 넓혀가는 경험은 참 귀중한 것 같아요. ‘원주롭다’가, 언제든 편히 서로의 인생 작품을 나눌 수 있는 장이 된다면 좋겠습니다.
새보미야 | 당신의 생각보다 훨씬 더 ______한 사람. 프로 백수라 불리곤 하는 프리랜서로, 주로 글을 쓰고 책을 만듭니다.
참여해주신 분들: 가영, 민, 김민지, 유, 원준, 김민정, 신지선, 유한솔, 유리, 밍, 웅, 권수진, 채요니, 김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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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의 인생 작품 나누기]
저는 활자 세대에 가깝습니다. 집에는 TV가 없고, 넷플릭스 같은 OTT 서비스도 구독하지 않습니다. 유튜브도 거의 보지 않아요. 정보를 얻을 때에도 뉴스나 백과사전을 검색하죠.
자연히 제가 본 드라마는 한 손으로도 꼽을 수 있을 정도입니다. 〈명랑소녀 성공기〉, 〈대장금〉, 〈강남엄마 따라잡기〉, 〈응답하라 1988〉 네 편이 전부네요. 모두 웰메이드였다고 생각하지만, 지금 시점에서 화제로 올리기엔 너무 오래된 것들이죠. 저는 TV 드라마보다 〈내가 그녀를 만났을 때(How I Met Your Mother)〉나 〈빅뱅 이론(The Big Bang Theory)〉처럼 외국 시트콤을 좋아했던 것 같아요. 최근에 흥미롭게 본 시리즈로는 〈빌어먹을 세상 따위(The End of the F***ing World)〉가 있는데, 이것조차 2017년 작품이네요.
이렇듯 매체의 발달사(?)를 따르지 못하고 뒤처져있는 사람이지만, 이야기를 시각화·청각화해 표현해내는 영상의 매력에는 십분 공감합니다. 뚜렷한 묘사와 높은 몰입도, 미장센의 아름다움이나 상징성 같은 것들 말입니다. 글로는 분명 다가갈 수 없는 영역이죠.
그렇다면 어떤 걸 ‘인생’ 영화 혹은 드라마라고 할 수 있을까요? 인생은 ‘사람이 세상을 살아가는 일’ 또는 ‘사람이 살아 있는 기간’을 일컫는 단어입니다.
첫 번째 뜻으로 생각해 보자면, 세상을 살아가는 데에 모종의 영향을 준 것을 인생 영화/드라마로 꼽을 수 있겠네요. 우리는 외부의 자극을 받아들이고, 그것을 소화하고 재구성해 자신을 완성해 나갑니다. 영화나 드라마를 통해 생각이 바뀌거나 취향이 정립되는 경험은 누구나 해봤을 거예요. 크게는 인생의 진로를 결정하기도 하고, 작게는 주인공이 먹는 음식을 따라 먹어볼 수도 있겠죠. 이번 클라우드에는 〈노트북〉을 꼽으며 ‘로맨스를 좋아하지 않았는데 취향이 바뀌었다’는 댓글이 있었는데, 그런 경우가 여기 해당할 겁니다. 저도 어린 시절 본 〈로마의 휴일〉을 ‘첫사랑 같은’ 영화로 손꼽곤 하는데, 이것이 제 ‘로맨스’의 기준점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한편 〈동백꽃 필 무렵〉을 인생 드라마로 꼽은 댓글은 ‘포항에 있는 촬영지를 구경가보’겠다고 덧붙였죠. 영상에서의 감동을 화면 밖의 활동으로 연결시키는 것도 이 경우에 해당할 것 같아요. 저도 〈중경삼림〉을 보고 홍콩 여행을,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를 보고 아이슬란드 여행을 떠났으니 꽤나 영향을 많이 받는 축이라 하겠습니다. 언젠가는 〈포레스트 검프〉처럼 미 대륙을 횡단하고 싶어요.
두 번째 뜻으로 생각해 보자면, 사는 동안 본 것 중 가장 좋았던 것이 인생 영화/드라마라 할 수 있을 거예요. 앞으로 살아갈 날이 많이 남아 있으니, 왕좌는 언제든 바뀔 수 있겠죠. 물론 오래전에 봤던 작품이 시간의 미화로 불가침의 인생 작품이 될 수도, 시간의 풍화 때문에 최근에 봤던 작품이 가장 선명한 명작으로 치고 올라올 수도 있을 겁니다. 문제는 ‘좋다’는 단어가 퍽 주관적이라는 데에 있네요. 물론 사전상의 뜻에 따라 ‘보통 이상의 수준’이라는 점을 충족해야 한다면 어느 정도 외부적 평가도 필요하겠지만, ‘만족할 만’함을 판단하는 기준은 결국 각자에게 달려 있을 겁니다. 댓글에선 〈이터널 선샤인〉, 〈쇼생크 탈출〉, 〈인생은 아름다워〉 같은 제목들 사이로 힐링, 사극(의 장엄함), 감동, 잊지 못함, 기억 같은 단어들이 넘실거립니다. 누군가는 ‘재수 시절에’ 〈첫키스만 50번째〉를, ‘20대 초반에’ 〈인터스텔라〉를 재밌게 봤다고 해주셨죠. 통찰력 있는 댓글이었습니다. 우리네 인생에는 수많은 굴곡이 있으므로, 때마다 와닿는 인생 작품이 달라질 수밖에요. 전 〈이터널 선샤인〉을 재개봉했을 때 봤는데, 아마 이별을 경험하기 전에 봤다면 그렇게 좋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어바웃 타임〉은 한창 짝사랑하던 시기, 상대방과 함께 봐서 더욱 잊지 못할 것 같고요.
앞선 두 뜻을 아울러, 저는 최초의 영향이 가시고 다양한 삶의 변곡점을 지난 후에도 계속해서 다시 찾게 되는 것이야말로 인생 작품이라고 정의를 내려보겠습니다. 앞서 언급한 몇 작품 외에도 이 기준에 맞춰 제 인생 영화를 몇 개 추천해 드리자면, ‘스토리’ 계열에서는 〈미스 리틀 선샤인〉이나 〈거북이는 의외로 빨리 헤엄친다〉, 〈실버라이닝 플레이북〉이 있어요. 지브리 스튜디오의 애니메이션도 빼놓을 수 없죠(단, 〈게드 전기〉는 제외하고!). ‘비주얼’ 계열로는 〈매드 맥스: 분노의 도로〉,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의 사막 추격전, 〈반지의 제왕〉 시리즈가 있습니다. 최근 개봉한 〈듄〉도 앞으로 몇 번은 다시 볼 것 같은 영화입니다.
클라우드의 작품들 중 아직 보지 못한 〈노트북〉을 조만간 보려 합니다. 다른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취향을 넓혀가는 경험은 참 귀중한 것 같아요. ‘원주롭다’가, 언제든 편히 서로의 인생 작품을 나눌 수 있는 장이 된다면 좋겠습니다.
새보미야 | 당신의 생각보다 훨씬 더 ______한 사람. 프로 백수라 불리곤 하는 프리랜서로, 주로 글을 쓰고 책을 만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