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 원주 클라우드는 클라우드 게시판에 띄운 주제에 남겨주신 댓글들로 키워드를 뽑았습니다.>
참여해주신 분들: 김지영, 가영, 주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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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수제비를 기억하며]
‘재주’는 순우리말이 아닙니다. 어원은 재조(才操/才調)라는 한자어죠. 두 한자를 뜯어보면 꽤 재밌습니다. 잡을 조(操)는 ‘잡다’·‘(손에) 쥐다’·‘다루다’·‘조종하다’ 등 주로 ‘손’을 사용하는 데에 연결되고요. 고를 조(調)는 ‘고르다’·‘조절하다’·‘어울리다’라는 뜻으로, 표현을 골라 어울리게끔 배치하는 ‘언어’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이 때문인지 재주라고 하면 대개 손재주, 또는 말재주·글재주와 연결되곤 해요.
재주 하니 문득 떠오르는 사람이 있습니다. 일본의 배우 모리카와 아오이(森川葵)입니다. 손으로 하는 일은 뭐든 잘하고 습득력이 빠르다 알려진 배우인데, ‘그게!? 실제로 어때?(それって!?実際どうなの課)’라는 심야 예능에서 달인들의 묘기를 배워 따라하는 ‘와일드 스피드 모리카와’ 코너를 통해 화제가 됐어요. 카드를 날려 촛불을 끄거나, 다섯 단으로 쌓은 와인잔을 깨뜨리지 않도록 테이블보를 잡아 빼거나, 과녁에 이미 꽂혀 있는 화살 속에 화살을 꽂아 넣거나, 스톤 밸런싱(돌 균형잡기)에 성공하는 등 어마어마한 장면이 자꾸 등장합니다. 달인이 몇 년에 걸려 익혔다는 기술을 단 몇 시간의 노력으로 손쉽게 해내버리는 모리카와의 재주에는 일종의 경외감마저 느껴지더군요.
국어사전에서는 재주를 ‘무엇을 잘할 수 있는 타고난 능력과 슬기’라고 설명합니다. ‘타고난’이라는 단어에 어쩐지 방점이 찍혀 있는 것 같아요. 한자 재(才)를 보아도 마찬가지입니다. ‘재주’, ‘재능’이라는 의미와 더불어 이 글자에는 ‘근본’이라는 뜻이 있어요. 어원이 된 갑골문이 땅 속을 뚫고 올라오는 새싹을 형상화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싹수가 보인다’는 말은 다들 익숙하시겠죠. 재주는 선천적인 탁월함에 대한 낱말인 셈입니다. 실제로 현대 과학은, 사람의 키와 체형, 지능은 물론 성격조차 유전자에 의해 결정된다는 사실을 알아냈죠. 어쩐지 약간 입맛이 쓰기도 합니다.
모리카와 아오이가 물수제비로 돌멩이를 스무 번 넘게 튕기는 데 성공하는 것을 보고, 문득 떠오르는 일이 있었습니다. 예전에 한반도지형으로 유명한 영월 선암마을에 놀러갔던 적이 있거든요. 뗏목체험을 하고 강변에 내려서 일행을 기다리고 있노라니, 노를 잡았던 어르신이 재미있는 걸 보여주겠다시며 물수제비를 해주셨습니다. 서른 번은 족히 튕겼던 것 같아요. 사람들이 감탄을 연발하자, 다음 뗏목의 노를 잡았던 어르신이 질 수 없다는 듯 엄청난 물수제비를 선보이셨죠. 돌멩이는 강 건너 절벽에 부딪쳤습니다. 다른 뗏목의 노꾼 어르신도, 또 다른 어르신도. 그러니까, 선암마을의 모든 토박이 할아버지들은 물수제비 ‘마스터’였던 겁니다. 그때 저는 말로 표현하기 힘든 고양감에 사로잡혔던 것 같아요. 수십 년 전, 달리 놀 것이 없었던 선암마을의 아이들이 내내 물수제비를 겨루며 보냈을 장면이 상상됐기 때문입니다. 선암마을의 모든 아이들이 타고난 손재주를 가지진 못했을 거예요. 그럼에도 모두가 건너편 절벽의 몇 번째 동굴에 돌멩이를 보낼지, 심지어 몇 번을 튕겨서 도달할지를 겨룰 수 있을 정도로 능숙해졌던 거죠. 그건 오랜 시간이 만들어낸 결과였습니다.
결국 재주에는 그것을 발견하기 위한 도전과 단련하기 위한 시간이 필요합니다. 뒤집어 말하면, 도전과 시간이 재주를 만들 수 있을지도 모르죠. 그러니, 우리 모두가 끊임없이 도전하고 좋아하는 일에 매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설령 거창하고 훌륭한 것이 아니더라도, 모두가 작고 소중한 행복과 연결되어 있을 테니까요. 선암마을 어르신들의 물수제비처럼요.
새보미야 | 당신의 생각보다 훨씬 더 ______한 사람. 프로 백수라 불리곤 하는 프리랜서로, 주로 글을 쓰고 책을 만듭니다.
참여해주신 분들: 김지영, 가영, 주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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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수제비를 기억하며]
‘재주’는 순우리말이 아닙니다. 어원은 재조(才操/才調)라는 한자어죠. 두 한자를 뜯어보면 꽤 재밌습니다. 잡을 조(操)는 ‘잡다’·‘(손에) 쥐다’·‘다루다’·‘조종하다’ 등 주로 ‘손’을 사용하는 데에 연결되고요. 고를 조(調)는 ‘고르다’·‘조절하다’·‘어울리다’라는 뜻으로, 표현을 골라 어울리게끔 배치하는 ‘언어’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이 때문인지 재주라고 하면 대개 손재주, 또는 말재주·글재주와 연결되곤 해요.
재주 하니 문득 떠오르는 사람이 있습니다. 일본의 배우 모리카와 아오이(森川葵)입니다. 손으로 하는 일은 뭐든 잘하고 습득력이 빠르다 알려진 배우인데, ‘그게!? 실제로 어때?(それって!?実際どうなの課)’라는 심야 예능에서 달인들의 묘기를 배워 따라하는 ‘와일드 스피드 모리카와’ 코너를 통해 화제가 됐어요. 카드를 날려 촛불을 끄거나, 다섯 단으로 쌓은 와인잔을 깨뜨리지 않도록 테이블보를 잡아 빼거나, 과녁에 이미 꽂혀 있는 화살 속에 화살을 꽂아 넣거나, 스톤 밸런싱(돌 균형잡기)에 성공하는 등 어마어마한 장면이 자꾸 등장합니다. 달인이 몇 년에 걸려 익혔다는 기술을 단 몇 시간의 노력으로 손쉽게 해내버리는 모리카와의 재주에는 일종의 경외감마저 느껴지더군요.
국어사전에서는 재주를 ‘무엇을 잘할 수 있는 타고난 능력과 슬기’라고 설명합니다. ‘타고난’이라는 단어에 어쩐지 방점이 찍혀 있는 것 같아요. 한자 재(才)를 보아도 마찬가지입니다. ‘재주’, ‘재능’이라는 의미와 더불어 이 글자에는 ‘근본’이라는 뜻이 있어요. 어원이 된 갑골문이 땅 속을 뚫고 올라오는 새싹을 형상화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싹수가 보인다’는 말은 다들 익숙하시겠죠. 재주는 선천적인 탁월함에 대한 낱말인 셈입니다. 실제로 현대 과학은, 사람의 키와 체형, 지능은 물론 성격조차 유전자에 의해 결정된다는 사실을 알아냈죠. 어쩐지 약간 입맛이 쓰기도 합니다.
모리카와 아오이가 물수제비로 돌멩이를 스무 번 넘게 튕기는 데 성공하는 것을 보고, 문득 떠오르는 일이 있었습니다. 예전에 한반도지형으로 유명한 영월 선암마을에 놀러갔던 적이 있거든요. 뗏목체험을 하고 강변에 내려서 일행을 기다리고 있노라니, 노를 잡았던 어르신이 재미있는 걸 보여주겠다시며 물수제비를 해주셨습니다. 서른 번은 족히 튕겼던 것 같아요. 사람들이 감탄을 연발하자, 다음 뗏목의 노를 잡았던 어르신이 질 수 없다는 듯 엄청난 물수제비를 선보이셨죠. 돌멩이는 강 건너 절벽에 부딪쳤습니다. 다른 뗏목의 노꾼 어르신도, 또 다른 어르신도. 그러니까, 선암마을의 모든 토박이 할아버지들은 물수제비 ‘마스터’였던 겁니다. 그때 저는 말로 표현하기 힘든 고양감에 사로잡혔던 것 같아요. 수십 년 전, 달리 놀 것이 없었던 선암마을의 아이들이 내내 물수제비를 겨루며 보냈을 장면이 상상됐기 때문입니다. 선암마을의 모든 아이들이 타고난 손재주를 가지진 못했을 거예요. 그럼에도 모두가 건너편 절벽의 몇 번째 동굴에 돌멩이를 보낼지, 심지어 몇 번을 튕겨서 도달할지를 겨룰 수 있을 정도로 능숙해졌던 거죠. 그건 오랜 시간이 만들어낸 결과였습니다.
결국 재주에는 그것을 발견하기 위한 도전과 단련하기 위한 시간이 필요합니다. 뒤집어 말하면, 도전과 시간이 재주를 만들 수 있을지도 모르죠. 그러니, 우리 모두가 끊임없이 도전하고 좋아하는 일에 매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설령 거창하고 훌륭한 것이 아니더라도, 모두가 작고 소중한 행복과 연결되어 있을 테니까요. 선암마을 어르신들의 물수제비처럼요.
새보미야 | 당신의 생각보다 훨씬 더 ______한 사람. 프로 백수라 불리곤 하는 프리랜서로, 주로 글을 쓰고 책을 만듭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