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이자 문화예술 기획과 교육을 하는 콘텐츠 회사 ‘오랜새벽’의 대표 이혜윤입니다. 네 살, 두 살 아들 둘을 키우는 엄마이기도 해요. 항상 전쟁 같이 지내고 있죠. 동쪽의 여자들은 저를 포함해 큐레이션 책방 ‘로컬플리커’를 운영하는 신동화, 원동에서 커뮤니티 카페 ‘나만아는’을 운영하는 최민희까지 세 명으로 구성된 팀입니다. 팀 이름은 동화 언니가 지었던 것 같아요. 강원도가 한반도에선 동쪽에 있잖아요. 해가 떠오르는 희망적인 느낌도 있고요.
셋 중 제가 막내라서, 계속 조르는 역할을 하고 있어요. 언니들한테 이거 하자, 저거 하자 얘기하면 다들 워낙 바쁘면서도 저를 불쌍히(?) 여겨줘서 못 이기는 척 끌려와 주는 거죠. 그렇게 일이 시작되면 동화 언니가 깔끔하게 마무리를 해요. 아카이빙 작업도 동화 언니가 맡고 있고요. 민희 언니는 대외 협력이라고 할까요? 사람들과 소통하고 연결하는 데에 워낙 특화된 사람이에요.
셋의 공통점이 있다면 예술을 기반으로 출발했다는 점입니다. 저는 그림을 전공했고, 동화 언니와 민희 언니는 둘 다 음악을 했죠. 그러면서 차츰 사회적 가치에 집중해 활동하고 있어요. 저는 예전에 NGO에서 일을 했고, 사회적기업가 육성사업에 참가해 회사를 창업하고 벽화 등 공공예술 프로젝트와 문화예술 교육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민희 언니는 카페에서 다양한 문화행사를 개최하며 커뮤니티를 형성하고, 재개발이 진행 중인 원동의 마을 이야기를 수집해 전하는 역할을 하고 있고요. 동화 언니는 책방을 운영하며 지역 창작자들을 소개하거나 지역의 이야기를 담아 왔는데, 아카이빙에 집중하기 위해 최근 새롭게 공간을 오픈했죠.
저희는 36.5도시 프로젝트와 인연이 깊어요. 지난해, 2021년 36.5도시 프로젝트 오리엔테이션을 계기로 만들어진 팀이거든요. 처음 인사를 나누는데 동화 언니도 아이가 있다고 하고, 민희 언니도 결혼을 했다는 거예요. 당시 아이를 키우고 일을 하며 여러모로 너무 힘들었을 때라, 다른 엄마들은 어떻게 이걸 헤쳐나가고 있는지 인터뷰를 해 보고 싶었거든요. 오리엔테이션이 끝난 후 돌아가려는 동화 언니와 민희 언니를 붙잡고 이야기를 나눴어요. 동화 언니는 공간을 운영하고 있었는데 육아를 하며 힘들 때 위로받을 수 있는 책들을 가져다 놓기 시작하면서 자연스럽게 책방이 된 거라고 하더라고요. 민희 언니는 아이는 없지만, 결혼을 하면 일단 큰 아이(남편!)가 생기잖아요. 자연스럽게 공감대가 형성될 수 있었죠.
다들 아마 비슷할 거예요. 유아기의 자녀가 있는 여성 창작자들은 오전 10시부터 낮 4시까지가 일할 수 있는 시간입니다. 저도 10시에 아이들을 어린이집에 등원시키고 바깥에서 해야 하는 일, 사람을 만나거나 은행 업무를 보는 등 필수적으로 해야 하는 일을 해요. 밤에 아이들을 재우고 난 후에 혼자서 해도 되는 일, 페이퍼워크를 하고요. 저는 심지어 작업실이 따로 있는데도 남편이 육아를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보니 식탁에서 일하는 시간이 훨씬 더 많아요. 일과 육아를 양립한다는 건 정말 쉽지 않은 일이고, 연구가 필요한 일인 것 같아요. 어떤 방식이 효율적일지, 어떤 도움을 받아야 하는지가 명확해져야 요구를 하기에도 수월할 테니까요. 그런데 다들 각자 알아서 고군분투하고 있잖아요. 그래서 새벽에 식탁에 앉아 일하는 엄마들의 이야기, 선배들의 이야기를 담고 싶었어요.
그렇게 주변에 어떤 엄마들이 있는지 찾아보고, 여러 명을 인터뷰했어요. 이야기를 듣다 보니 다들 응원과 공감을 주시더라고요. 강원문화재단 연구사업을 받아서 인터뷰집이 발간될 수 있었죠. 계속 이어서 작업을 해 나가고 싶었는데 여건이 안 되어서 못 하고 있었어요. 그러다 올해 36.5도시 프로젝트에 도전하게 된 거예요. 전년도 프로젝트에서 처음 만나 만들어진 팀이니 인연도 깊고, 각자였던 기획자 셋이 협업을 하게 됐으니 이것만으로도 의미가 있지 않나 싶었거든요. 다행히 36.5도시 프로젝트에 선정되면서 인터뷰를 진행할 수 있게 됐어요.
올해는 비올리스트이자 공연기획사 ‘클래식스’를 운영하는 정민경 대표님, ‘사각사각스튜디오’를 운영하는 캘리그래퍼 신은정 대표님, 문화도시 원주형 문화예술교육인 ‘이오(2×5)프로그램’을 개발한 ‘비커밍 콜렉티브’의 김정이 대표님, 세 분을 만났습니다. 질문은 항상 같았어요. “어떻게 일과 육아를 병행하고 있나요?”
바쁘신 와중에도 모두 흔쾌히 인터뷰에 응해주셨습니다. ‘엄마’라는,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강력한 연대감이 이미 있잖아요. 김정이 대표님은 인터뷰를 마치며 저희가 엄청 좋은 일을 하고 있다고 응원해 주셨고, 정민경 대표님은 가족 안에서 현명하게 관계를 맺는 법에 대해 꿀팁을 주시기도 하셨어요. 신은정 대표님과는 인터뷰 녹음을 끝내고 나서도 우리가 직면한 상황들에 대해 더 이야기를 나눴죠.
저희가 찾아낸 문제점은, 돈을 버는 일은 스스로 인정하기도 주변에서 인정받기도 수월한데 개인적인 작업은 그렇지 않다는 거였어요. 센터에 수업하러 갈 때 아이를 맡기는 건 괜찮지만, 그림 작업하러 가야 한다고 말을 꺼내기는 어려운 거죠. 또 예를 들어 남편의 ‘회식’은 공식적인 업무로 여겨지잖아요. 그런데 우리는 다 프리랜서거나 개인사업자니까 만나서 친목을 도모하는 자리가 그냥 노는 느낌인 거죠. 그래서 우리끼리도 공식적인 회식을 해 보자고 해서 ‘인터뷰 진행 결과 보고를 위한’ 자리를 만들고 끝내주게 놀기도 했습니다. 노래방도 가고요. 네트워킹의 끝은 노래방이잖아요. 그동안 정말 너무 가고 싶었거든요.
저희는 이 프로젝트가 너무 즐거워서 일같지 않다고 얘기를 나누곤 했어요. 듣고 싶었던 얘기를 듣는 일이었고, 그 과정에서 서로의 일상에 위로가 됨을 느꼈거든요. 개인의 관심사에서 출발한 프로젝트지만, 연결된 결과를 보니 결국 모두의 이야기더라고요. 여성들은 각각 생애 주기에서 커리어에 영향을 많이 받게 되잖아요. 청소년부터, 결혼, 완경까지를 모두 따라가 보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주변에서 이 프로젝트를 반가워하시면서 공감해 주실 때마다 보람도 느껴져요. 인터뷰이끼리 연결을 시켜 드리기도 했는데, 서로의 상황을 잘 이해하고 있어 협업이 훨씬 수월하고 시너지가 나기도 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더 많은 엄마를 만나고, 기록하고, 확장되는 미래를 꿈꾸고 있어요.
가까운 언젠가는 인터뷰한 분들과 다 같이 모이는 자리도 만들어 보고 싶어요. 지금까지는 아카이빙을 해 왔으니, 네트워킹에 더 초점이 맞춰진 장을 만든다면 어떨까요? 정말 끝도 없이 말하고,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을 거예요. 우리의 이야기에는 힘이 있으니까요.
동쪽의 여자들
→ 이혜윤 @whole_new_wall_
인터뷰 진행 및 글
→ 새보미야 @saebomiy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