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머물고 그 장소를 만들며 도시를 변화시키는 이 건축의 이름은 '장소 만들기'라고 하며 원주 도시 곳곳에서 축제로서 시도될 예정이다
'건축은 시대를 반영하는 거울이다'.
이 말은 현대건축의 아버지 르 코르비쥐에(Le Corbusier)가 건축을 정의한 말이다. 지난 건축물들의 모습을 보면 이 말의 의미가 와닿는다. 고대의 자연물을 활용한 거친 건축물은 자연과 인간이라는 시대적 모습을 담고, 중세의 예술적 첨탑의 수직적 모습들은 종교와 인간이라는 시대적 모습이 담겨 있다.
또 근대의 간결하고 효율적인 건축물은 산업과 인간의 시대적 모습이 담겨 있다. 그렇다면 지금의 시대를 반영하는 건축은 어떤 모습일까? 최근 현대의 건축물은 하이테크를 상징하는 듯한 유선형의 멋진 조형을 뽐내기도 하고 기술이 집약된 친환경 넷제로(Net-zero)를 추구하며 인간의 미래상으로 그려지고 있다. 하지만 그러한 건축물을 보면 기술이 응축된 기계로서 인간을 압도하고 있는 표상으로 느껴지며 건축에서 인간은 어떤 존재인가? 점점 사라지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시대는 균형을 쫓는다.
기술과 물질의 무게에 의해 기울어졌던 시대는 다시 사람의 가치에 대한 무게로 조금씩 기울어져가며 균형을 쫓고 있다. 지금의 시대는 기술과 사회의 발달로 일반 시민들이 정보와 지식에 대한 접근이 훨씬 쉬워졌다. 그러면서 소수에게 부여되었던 특별한 지식과 경험이 특별한 것이 아니게 되며 일반 시민들의 다양한 생각과 실천이 삶을 발전시키는 가치로서 인정받고 있다.
이러한 시대를 반영하는 건축은 어떤 모습이 되어야 할까? 사람들의 다양성과 스스로 만들어가는 사회라는 시대적 모습을 건축에 어떻게 담을 수 있을 것인가? 시대는 다양화되고 정답이 없는 다양한 생각들이 공존하는 세상으로 접어들고 있다. 이 시대의 건축 또한 누군가에게 정의되는 건축은 점점 그 자리가 줄어들고 정의할 수 없는 다양한 형태의 건축들이 등장한다.
이제 건축은 벽과 기둥을 세워 올려 만든 건축물로 이 다양성의 시대를 반영하는 것에는 한계에 이르렀다고 생각한다. 그럼 벽과 기둥을 대체하는 어떤 것이 건축이 될 것인가? 라는 질문의 답안지에 나는 사람이라는 답으로 써보려고 한다.
시대의 모습을 담은 건축
사람들이 오가는 어느 평범한 길 한편에 작은 공터가 있다. 어느 날 이 공터에 작은 두 의자가 놓이게 된다. 지나가던 사람 중 누군가가 그 의자에 쉬려고 앉게 된다. 조금 지나 다른 누군가도 쉬기 위해 옆에 의자에 앉게 된다. 우연히 만나 함께 있던 두 사람은 인사를 나누고 서로를 알게 된다. 이날은 이 의자가 놓인 장소가 최고의 커뮤니티 공간이 된 날이다.
다음날에는 한 거리의 악사가 찾아왔다. 이 의자에 앉아 자신의 연주를 한다. 지나가던 사람 하나, 둘이 멈춰 서게 되고 악사의 음악을 듣는다. 조금 시간이 흐르니 다른 누군가가 그 악사의 옆에 앉아 음악에 맞춰 노래를 불러보게 된다. 사람들은 즐거워하고 이날은 세상에서 가장 멋진 콘서트홀이 만들어진 날이 된다.
어떤 날은 그림을 그리는 화공이 와서 그림을 그리게 되고, 어떤 날은 의자를 놀이터로 쓰는 아이들이 찾게 되기도 한다. 그렇게 시간이 점점 지나다 보니 어느덧 사람들의 삶에서 이 장소는 가장 멋진 공간이 되어 있었다.
이 내용은 상상이며 하나의 예시일 뿐이지만 우리 주변에서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어느 평범한 공터에 나타난 두 개의 의자라는 작은 변화는 사람들을 머물게 하였고 그때부터 사람들은 그 공간을 건축하기 시작했다. 그 건축은 정답은 없지만 언제나 옳고 사람에 따라 끊임없이 변화한다.
이것이 내가 생각하는 이 시대의 모습을 담은 건축이고 사람이 건축이 되는 모습이다. 사람이 머물고 그 장소를 만들며 도시를 변화시키는 이 건축의 이름은 장소만들기(Placemaking)라고 하며 원주 도시 곳곳에서 축제로서 시도될 예정이다.
마지막으로 도시의 사상가이자 계획가 제인 제이콥스(Jane Jacobs)의 말로 글을 마무리하려고 한다.
"도시는 모든 시민들에게 무언가 제공할 능력이 있다. 도시는 모든 사람에 의해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 '시대를 담는 건축' 본문 보러가기
'건축은 시대를 반영하는 거울이다'.
이 말은 현대건축의 아버지 르 코르비쥐에(Le Corbusier)가 건축을 정의한 말이다. 지난 건축물들의 모습을 보면 이 말의 의미가 와닿는다. 고대의 자연물을 활용한 거친 건축물은 자연과 인간이라는 시대적 모습을 담고, 중세의 예술적 첨탑의 수직적 모습들은 종교와 인간이라는 시대적 모습이 담겨 있다.
또 근대의 간결하고 효율적인 건축물은 산업과 인간의 시대적 모습이 담겨 있다. 그렇다면 지금의 시대를 반영하는 건축은 어떤 모습일까? 최근 현대의 건축물은 하이테크를 상징하는 듯한 유선형의 멋진 조형을 뽐내기도 하고 기술이 집약된 친환경 넷제로(Net-zero)를 추구하며 인간의 미래상으로 그려지고 있다. 하지만 그러한 건축물을 보면 기술이 응축된 기계로서 인간을 압도하고 있는 표상으로 느껴지며 건축에서 인간은 어떤 존재인가? 점점 사라지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시대는 균형을 쫓는다.
기술과 물질의 무게에 의해 기울어졌던 시대는 다시 사람의 가치에 대한 무게로 조금씩 기울어져가며 균형을 쫓고 있다. 지금의 시대는 기술과 사회의 발달로 일반 시민들이 정보와 지식에 대한 접근이 훨씬 쉬워졌다. 그러면서 소수에게 부여되었던 특별한 지식과 경험이 특별한 것이 아니게 되며 일반 시민들의 다양한 생각과 실천이 삶을 발전시키는 가치로서 인정받고 있다.
이러한 시대를 반영하는 건축은 어떤 모습이 되어야 할까? 사람들의 다양성과 스스로 만들어가는 사회라는 시대적 모습을 건축에 어떻게 담을 수 있을 것인가? 시대는 다양화되고 정답이 없는 다양한 생각들이 공존하는 세상으로 접어들고 있다. 이 시대의 건축 또한 누군가에게 정의되는 건축은 점점 그 자리가 줄어들고 정의할 수 없는 다양한 형태의 건축들이 등장한다.
이제 건축은 벽과 기둥을 세워 올려 만든 건축물로 이 다양성의 시대를 반영하는 것에는 한계에 이르렀다고 생각한다. 그럼 벽과 기둥을 대체하는 어떤 것이 건축이 될 것인가? 라는 질문의 답안지에 나는 사람이라는 답으로 써보려고 한다.
시대의 모습을 담은 건축
사람들이 오가는 어느 평범한 길 한편에 작은 공터가 있다. 어느 날 이 공터에 작은 두 의자가 놓이게 된다. 지나가던 사람 중 누군가가 그 의자에 쉬려고 앉게 된다. 조금 지나 다른 누군가도 쉬기 위해 옆에 의자에 앉게 된다. 우연히 만나 함께 있던 두 사람은 인사를 나누고 서로를 알게 된다. 이날은 이 의자가 놓인 장소가 최고의 커뮤니티 공간이 된 날이다.
다음날에는 한 거리의 악사가 찾아왔다. 이 의자에 앉아 자신의 연주를 한다. 지나가던 사람 하나, 둘이 멈춰 서게 되고 악사의 음악을 듣는다. 조금 시간이 흐르니 다른 누군가가 그 악사의 옆에 앉아 음악에 맞춰 노래를 불러보게 된다. 사람들은 즐거워하고 이날은 세상에서 가장 멋진 콘서트홀이 만들어진 날이 된다.
어떤 날은 그림을 그리는 화공이 와서 그림을 그리게 되고, 어떤 날은 의자를 놀이터로 쓰는 아이들이 찾게 되기도 한다. 그렇게 시간이 점점 지나다 보니 어느덧 사람들의 삶에서 이 장소는 가장 멋진 공간이 되어 있었다.
이 내용은 상상이며 하나의 예시일 뿐이지만 우리 주변에서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어느 평범한 공터에 나타난 두 개의 의자라는 작은 변화는 사람들을 머물게 하였고 그때부터 사람들은 그 공간을 건축하기 시작했다. 그 건축은 정답은 없지만 언제나 옳고 사람에 따라 끊임없이 변화한다.
이것이 내가 생각하는 이 시대의 모습을 담은 건축이고 사람이 건축이 되는 모습이다. 사람이 머물고 그 장소를 만들며 도시를 변화시키는 이 건축의 이름은 장소만들기(Placemaking)라고 하며 원주 도시 곳곳에서 축제로서 시도될 예정이다.
마지막으로 도시의 사상가이자 계획가 제인 제이콥스(Jane Jacobs)의 말로 글을 마무리하려고 한다.
"도시는 모든 시민들에게 무언가 제공할 능력이 있다. 도시는 모든 사람에 의해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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