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매원주

볼매원주 시리즈는?

: 기존에 있던 원주의 다양한 문화 자원·콘텐츠를 '문화도시 원주'만의 색을 담아 볼수록 매력적인 원주의 문화콘텐츠로 재발견합니다.

엽서북

<원주지명총람> 4.문막읍 - 동화리

  • 작성자 관리자
  • 등록일 2021.08.14
  • 조회수 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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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도시 원주
볼매원주 시리즈 2탄
- 원주 지명 총람 -
 
<원주지명총람> 4.문막읍 - 동화리
문막읍 –4. 동화리
 
[위치]
동화리는 문막읍에서 가장 동쪽에 있는 마을이다.
동쪽으로는 흥업면, 서쪽으로는 건등리와 지정면 안창리, 남쪽으로는 건등리,
북쪽으로는 지정면 간현리와 접해 있다.
 
[연혁]
원래 원주군(原州郡) 사제면(沙堤面)의 분5리・분6리 지역이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분5리・분6리 일부를 병합하여 동화리(桐華里)로 하고
건등면(建登面)에 편입, 건등면 동화리가 되었다.
1936년 건등면을 문막면(文幕面)으로 개칭하여 문막면 동화리가 되었다.
1995년 3월 문막면이 문막읍(文幕邑)으로 승격함에 따라
문막읍 동화리가 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유래]
동화산(桐華山) 밑에 마을이 있으므로 동화리라 하였다.
[원주지명총람(상) p.326]
 
 
 
[+]
동화사터(桐華寺-) [터]
동화골 안, 절골에 있는 옛 동화사 터를 말한다. 현 동화사 서쪽 골짜기에 있던 절이다.
 
창건과 폐사 연도는 알려져 있지 않다. 규모가 큰 석축과 상당수의 기와편이 남아있다.
생육신 중 한 명인 김시습이 여기에서 지내며 지었다는 시가 〖매월당집〗에 실려 있고,
신광한의 〖기재집〗, 김부륜의 〖설월당집〗, 한준겸의 〖유천유고〗 등에
동화사와 관련된 시가 전한다.
 
전설➊
명봉산 험준한 골짜기에 절을 지으면서 봉황(鳳凰)은 오동나무가 아니면
깃들지 않는다는 옛말에 따라 절 이름을 동화사라 하고 절 앞에는 오동나무를 심었다.
오동나무가 수백 년이 지나 절을 뒤덮어버리는 지경에 이르자
주지승이 나무를 베어버렸는데 제일 큰 오동나무를 베어 넘기려는 찰나
봉황의 처절한 울음소리와 날개소리가 메아리치면서 핏물이 흘렀고
이에 놀란 스님들이 공포에 떨면서 절을 떠났다.
주지승 홀로 절을 지켰으나 빈대가 기승을 부려 주지승마저 절을 떠났다.
사람들은 오동나무를 베어 명봉산(鳴鳳山) 정기가 빠져 나가는 바람에
절이 망했다고 말한다.
 
전설➋
조선 중엽에 한 승려가 오동나무 한 그루를 주면서 이 나무를 잘 기르면
자손과 마을이 번창할 것이라는 말을 남기고 동화산 부처골로 가서 절을 지었다.
그 절에는 큰스님과 동자 한 명이 살고 있었는데
그 동자는 무척 총명하여 큰스님의 가르침을 잘 익혔다.
동자가 18세가 되어 작은 스님이 되자 기운이 쇠약해진 큰스님은 작은 스님에게
장차 이 절을 맡아줄 것을 부탁하였다.
그리고 자신의 죽음을 예감하고는 작은 스님에게 자신이 불공을 드리는 동안
마을에 가서 시주를 하여 가지고 오라 하였는데
동화사 입구에서 절까지 오는 동안 절대로 뒤를 돌아보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하였다.
작은 스님이 시주를 끝내고 동화산 중턱에 다다랐을 때 굉음이 울리며 광풍이 불더니
어마어마하게 큰 천년 묵은 빈대가 소리를 지르며 빨리 가서 부처를 가지고 오면
큰스님의 목숨을 살려주겠다고 하였다.
큰스님은 절대 무슨 일이 있어도 부처를 가지고 오면 안 된다고 큰소리를 쳤다.
작은 스님은 무작정 절을 향해 뛰었는데 그때 큰스님의 비명소리가 들렸다.
작은 스님이 놀라 고개를 돌려보니 큰스님은 살아있고
빈대가 죽으면서 큰스님의 목소리를 흉내 낸 것이었다.
작은 스님이 돌아보며 큰스님과 눈이 마주치는 순간
빈대는 마지막 힘을 다해 꼬리로 큰스님을 후려쳤다.
큰스님은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고 그때서야 잘못을 안 작은 스님은
절을 향해 도망치다가 백년바우 아래로 떨어져 죽었다.
원래 절터는 빈대의 소굴이었는데 큰스님은 부처님의 가르침으로 절을 지었고
천년 묵은 빈대는 큰스님의 기운이 쇠약해질 때를 기다려 싸움을 건 것이었다.
이를 보이지 않으려고 작은 스님을 시주 보낸 것이었다.
절은 폐허가 되었고 백년바우에는 노송이 혼이 되어 서 있으며
오동나무도 점점 없어지고 지금은 두어 그루가 남아있는데
그 후부터 이 산을 동화산이라 하고 마을은 동화골이라 하였다고 한다.
[원주지명총람(상) p.330]
 
 
 
<볼매원주 시리즈 – 원주지명총람>은?
‘문화도시 원주’에서는 「원주지명총람」에 수록된 77개의 원주 지명을 엽서로 제작하여 지명에 대한 정보와 이야기를 시민과 공유하고자 합니다.
 
 
<원주지명총람> 4.문막읍 - 동화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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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주지명총람> 4.문막읍 - 동화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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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볼매원주 시리즈에 업로드 된 엽서 콘텐츠로 <엽서북>을 제작하여 원주 시민에게 배포하고자 합니다. 배포처는 추후 공유됩니다.
**「원주지명총람」은 원주시역사박물관 홈페이지를 통해 확인 할 수 있습니다.
(https://whm.wonju.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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