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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5도시 프로젝트

원주에서 잘 놀고 있습니다: 초록냄비의 36.5도시, ‘그림책을 만나다 – 나를 만나다'

  • 작성자 36.5도시 프로젝트
  • 등록일 2022.11.25
  • 조회수 309
원주에서 잘 놀고 있습니다:  초록냄비의 36.5도시, ‘그림책을 만나다 – 나를 만나다'
원주에서 잘 놀고 있습니다:  초록냄비의 36.5도시, ‘그림책을 만나다 – 나를 만나다'

안녕하세요? 저는 그림책 활동가 초록냄비라고 합니다. 그림책이 저에게 위로와 치유를 주었기 때문에, 그걸 다른 사람에게도 전하고자 하는 마음을 갖고 있어요.

제 인생 그림책은 〈아나톨의 작은 냄비〉라는 작품입니다. 작은 냄비를 달고 살아가는 아나톨의 이야기예요. 냄비는 그림책을 읽는 독자마다 다르게 해석을 할 수 있어요. 장애, 가난, 남들과 다른 무언가일 수도 있고요. 책에는 초록색 냄비를 가진 사람이 나오는데, 그 사람은 주인공인 아나톨에게 냄비를 가지고 살아가는 방법을 알려줍니다. 이 그림책을 읽고 초록색 냄비를 가진 사람 같은 어른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수년 동안 해 왔어요. 그래서 ‘초록냄비 그녀’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다가, 이제는 일체화가 된 상태라고 생각하고 초록냄비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냄비에 제 마음속의 희망과 꿈도 담고 있는 상태예요.

원주에서 잘 놀고 있습니다:  초록냄비의 36.5도시, ‘그림책을 만나다 – 나를 만나다'

사실 저는 어렸을 때 책을 좋아하지 않는 아이였어요. 너무 느려서 한 장을 읽는데도 곱씹고 생각하느라 오랜 시간이 걸렸거든요. 다른 아이들은 금방 책장을 넘기고 서로 교환해서 읽기도 하는데 나는 왜 빨리 이해하지 못하는 걸까 고민하다가 책을 아예 열어보지 않게 됐죠. 그러다 결혼을 하고 아이가 태어나면서, 아이만큼은 책을 좋아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그림책을 구입했어요. 수십 권을 열심히 읽어주다 보니, 점점 책이 좋아지더라고요. 그림책은 그림을 한참 보며 상상해도 좋고, 많은 생각을 해도 안전하고, 글도 많지 않은 부분이 저와 잘 맞았던 것 같아요. 그림책이 좋아지고 자꾸 읽게 되니까, 나중에는 글책에도 손이 가게 되더군요. 신기하죠. 사람마다 책을 사랑하게 되는 시기가 다 다르다는 게요.

아이가 학교에 가면서 주변의 다른 아이들에게도 그림책을 읽어주고 싶더군요. 그렇게 매주 금요일 아침마다 학교에서 그림책을 읽어주는 봉사활동을 시작하게 됐고, 이게 제 인생에서 제일 잘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6년 후 아이가 졸업한 후로는 원주시에서 하는 다양한 관련 행사에 참여해 그림책을 읽어주는 봉사활동을 계속했고요. 그림책을 잘 접하지 못했던 사람들에게 그림책을 소개하는 ‘그림책 바구니 프로젝트’나, 텐트에서 랜턴을 켜 놓고 그림책을 읽는 ‘그림책 별밤 캠프’도 기획했죠. 좋아하는 그림책을 챙겨 치악산 숲속으로 나들이를 가기도 했고요. 숲속에서 도시락을 먹고 웃으며, 음악과 함께 각자 가져온 그림책을 나누어 읽었던 시간은 너무 행복해서 그 자체가 그림책의 한 장면처럼 남아 있어요.

원주에서 잘 놀고 있습니다:  초록냄비의 36.5도시, ‘그림책을 만나다 – 나를 만나다'

이런 기억들이 너무 좋아서, 개인적으로도 그림책과 관련한 다양한 기획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키운 꿈이, 그림책을 선물하고 싶다는 거였어요. 다른 사람들에게 그림책을 만나도록 소개하는 것이 제가 할 수 있는 가치있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많은 분들게 그림책을 선물하는 것을 꿈꾸고 있다가, 그게 이번 36.5도시 프로젝트를 통해 이루어지게 된 거죠.

올 여름 초등학교 한 곳, 중학교 두 곳, 학업을 마치지 못한 어른들이 배움을 하는 야학까지 네 곳을 방문했고, 100여 명을 만나 그림책을 나눴습니다. 산타할아버지가 된 느낌이었어요. 수업을 하기 위한 그림책 및 자료들과, 선물로 준비한 그림책까지, 여행가방을 두세 개씩 끌고 다녔거든요. 항상 빨간 가방에 그림책을 가득 담아 다녔는데, 그 가방이 이번에 완전히 망가지고 말았죠.

원주에서 잘 놀고 있습니다:  초록냄비의 36.5도시, ‘그림책을 만나다 – 나를 만나다'

가는 곳마다 선물한 그림책은 다 달랐어요. 제가 전하고 싶은 의미가 담긴 그림책을 준비했던 것 같아요. 초등학생들에게는 외부의 평가에 관계없이 우리의 존재는 그 자체로 소중하다는 내용이 담긴 이야기책을, 중학생들에게는 정해진 사회적 룰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는 철학적인 이야기가 담긴 책을 가져갔어요. 어르신들께는 은퇴한 노부부가 인생의 중요한 순간이 바로 지금임을 깨닫는 내용의 책을 읽어드렸죠.

원주에서 잘 놀고 있습니다:  초록냄비의 36.5도시, ‘그림책을 만나다 – 나를 만나다'

첫 학교에 가서 함께 그림책 수업을 진행한 다음 마지막에 그림책을 선물했는데, 정적이 흐르더라고요. 다들 선물을 받자마자 책을 열고 읽고 있는 거예요. 시키지 않았는데도 자연스럽게 그림책에 빠져드는 걸 보며 감격스러운 느낌이 들었어요. 책을 읽는다는 게 억지로 되는 게 아니잖아요. 좋아하는 건 표정에서 바로 드러나니까요.

두 시간이라는 짧은 시간이었으니, 참가자들의 일상에 엄청난 변화가 일지는 않았겠죠. 그렇지만 낯선 이로부터 받는 선물이라는 새로운 경험과, 그림책을 통해 자신을 발견하고 공감할 수 있었던 순간은 기억에 많이 남았을 것 같아요. 수업을 마친 후 따로 다가와서 솔직하게 자신의 속마음을 전하는 분들도 여럿 계셨는데, 그런 이야기들을 제게 나누어 주셔서 정말 감사했고, 그 자체가 그분들의 일상에 위로가 되었을 거라고 생각해요. 다들 각자의 힘든 일이 있고, 여러 상황에서 가면을 쓰고 살아가잖아요. 그림책을 통해서 자신의 마음을 마주하는 경험을 만나길 바라는 마음으로 저도 더 힘을 내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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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같은 경우는 그림책 읽어주는 봉사활동을 시작한 지 거의 10년이 다 되어 가거든요. 이 일을 계속해야 하는지, 내 능력이 부족하지는 않은지 고민하며 슬럼프 비슷한 것을 겪고 있던 찰나에 딱 36.5도시 프로젝트를 만난 거였어요. 스스로에게 계속해도 괜찮다는 말을 해 줄 수 있는, 그런 시간이었던 것 같아요. 이 일을 제가 할 수 있는 데까지는 계속하고 싶다고, 그림책을 전하는 할머니로 나이를 먹고 싶다고요. 그래서 제게도 이 프로젝트가 오래 기억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조금 더 나아간다면, 저를 닮은 그림책을 써 보고 싶다는 꿈도 갖고 있네요. 제가 쓴 그림책이 세상에 나온다면 어떨까, 조금 더 솔직해질 수 있지 않을까, 진심이 더 잘 전달되지 않을까 생각도 해 보고요. 그림책이 항상 제게 ‘나도 그래, 너도 이상한 게 아니야’ 이런 말을 해 주는 게 좋았거든요. 오랜 시간 동안 그림책으로부터 토닥거림을 받으며 준비해 왔으니, 나의 이야기가 세상에 나올 수도 있을 것 같다는, 그런 씨앗을 마음 깊이 품고 있습니다.


초록냄비
→ 조용숙 @greenbooks9528

인터뷰 진행 및 글
→ 새보미야 @saebomiy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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