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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주에서 잘 놀고 있습니다: 그림한권의 36.5도시, ‘도루깨와 쟁이의 딴짓 프로젝트’

  • 작성자 36.5도시 프로젝트
  • 등록일 2022.10.28
  • 조회수 6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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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주에서 잘 놀고 있습니다: 그림한권의 36.5도시, ‘도루깨와 쟁이의 딴짓 프로젝트’

원주에서 잘 놀고 있습니다: 그림한권의 36.5도시, ‘도루깨와 쟁이의 딴짓 프로젝트’

소개해 달라는 말을 들으면 항상 고민스럽습니다. 나는 어떤 사람이지? 어떤 작업을 한다고 말해야 하지? 대답이 곤란할 정도로 여러 가지에 촉이 곤두서 있는, 나무처럼 가지가 많이 뻗어 있는, 그런 사람이라 해야할 것 같기도 하고요.

굳이 설명해야 한다면, 좋아하는 것과 작업하는 것이 연결된 사람이라고 해야겠습니다. 그중 제일 오래 한 것은 한지 작업이에요. 한지로 조형을 하기도 하고, 지승(紙繩)·지호(紙戶)·색지(色紙) 같은 전통 공예도 했어요. 옛날 공예가 대개 그렇듯 정말 뼈를 갈아 넣어야 하죠. 팔을 많이 쓰고, 힘이 무척 들고, 인내심도 엄청 필요하거든요. 20년이 넘게 한지 작업을 하다 보니 몸이 많이 상했습니다. 양쪽 어깨를 수술하고 재활하는 데에 각각 6개월씩 걸렸죠. 병원에 갔더니 운동선수였냐고 묻더군요. 요즘은 주로 한지를 염색하고 찢어서 그림을 그리는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원주에서 잘 놀고 있습니다: 그림한권의 36.5도시, ‘도루깨와 쟁이의 딴짓 프로젝트’

그림은 원래부터 좋아했어요. 곧잘 그리기도 했고요. 학교에서 6·25 반공 포스터 그리기 같은 대회를 하면 항상 상을 탔고, 책받침을 사지 못하면 저녁에 방영되는 만화를 보면서 따라 그려 다음날 친구들의 책받침과 맞바꾸기도 했죠.

그림뿐만 아니라 무언가 만드는 것도 좋아했습니다. 아버지가 재주가 많으셔서 칼 쓰는 방법이라든지 나무 깎는 요령 같은 걸 알려주셨죠. 남자아이들과 주로 놀면서 나무로 활을 만들거나 총을 깎아주다 보니 골목대장이 되기도 했어요. 딱지도 잘 접고, 딱지치기도 잘했고요. 인형을 갖고 싶은데 부모님이 안 사주시면 직접 만들기도 했습니다. 종이 인형을 그려서 놀다가, 조금 커서는 베개 솜을 뜯어다 속을 집어넣고 할머니 한복을 찢어다 인형 옷을 만들곤 했죠.

지금 하는 모든 작업이 다 이런 ‘놀이’에서 시작한 거예요. 어른이 되어서도 꾸준히 바느질과 뜨개질을 하고, 그림을 그렸습니다. 카페 공간을 운영하며 수집해온 물건을 전시하거나 플리마켓을 개최하기도 했고요.

원주에서 잘 놀고 있습니다: 그림한권의 36.5도시, ‘도루깨와 쟁이의 딴짓 프로젝트’

최근 몇 년 사이에는 독립출판이라든지 그림책에 관심을 갖게 되었어요. 지난해에는 「C도로의 봄」이라는 독립출판물을 내기도 했죠. 작품 전시는 많이 해 봤지만, 전시는 기간이 끝나면 그만이고 그림도 팔려나가면 끝이잖아요. 전시장에 오기 힘든, 어떻게 보면 평범한 시간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보기 어렵고요. 좀 더 사람들을 만날 수 있도록, 내 작업들, 시간들, 생각들을 한 권으로 엮어내고 싶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그림한권’이라는 이름이 만들어졌습니다. 어릴 때부터 항상 내 안에 있었던 ‘그림’에 책을 의미하는 ‘한 권’을 붙인 거예요. 단순하죠? 1인 출판사의 이름으로 써볼까 해서 만들었는데, 공간을 오픈하면서 공간의 이름으로도 쓰고 있어요.

원주에서 잘 놀고 있습니다: 그림한권의 36.5도시, ‘도루깨와 쟁이의 딴짓 프로젝트’

36.5도시 프로젝트에 참여한 것도 비슷한 맥락이었던 것 같아요. 사람들과 공유하고 싶은 마음. 한편으로는 이런 공적인 프로젝트를 혼자 기획하는 것이 처음이어서, 개인적으로는 큰 도전이기도 했습니다. 프로젝트를 준비하며 고민도 많았어요. 소개해달라는 질문을 받을 때 마음이 어지러운 것처럼, 이것도 저것도 다 하고 싶었거든요. 어떤 주제로 해야 다들 공감하고 재미있어할지도 생각이 많았습니다. 결국, 내가 해왔던 모든 것을 다 섞어보기로 했습니다. 취미, 직업으로 하는 일, 작가로서 하는 작업, 모두를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건 어떨까 하고요.

하나의 색을 말할 수 없다 보니, ‘딴짓’이라는 단어가 떠올랐습니다. 어릴 때 항상 들었던 말이에요. 또 딴짓하고 있네. 딴짓 좀 하지 마. 그런데 그 딴짓으로 저는 지금 작품을 하고, 전시회도 하고, 먹고살기도 합니다. 사람들에게 나의 딴짓 이야기를 들려주고, 같이 경험할 수 있게 하면 좋을 것 같았어요. 재밌게 노는 건 자신 있으니까요.

원주에서 잘 놀고 있습니다: 그림한권의 36.5도시, ‘도루깨와 쟁이의 딴짓 프로젝트’

그렇게 5회차로 한지 염색과 컬러테라피, 그림책 팬아트, RC카, 수제종이와 엽서, 나무 북엔드(bookend) 체험을 진행했습니다. 공간이 협소해 회차별 6명을 한정해 모집했는데, 반려·자녀와 함께 온 경우도 있어 실제 참가 인원은 더 많았습니다. 유치원생부터 4~50대까지 연령대도 다양했고요. 작게 구성했지만 예상보다 알차고 재밌게 진행된 것 같아요. 체험도 체험이지만 공간에 워낙 다양한 것들이 있어 누구나 하나쯤은 관심 가질 만한 게 있었거든요. 놀이와 만들기에 관심이 없어도, 하다못해 이 공간 자체, 오래된 건물과 텃밭 따위에 만족하신 분도 있었어요.

참가자들의 만족도를 정확히 알 순 없지만, 적어도 그날 하루만큼은 모두 완벽한 일탈을 했던 것 같아요. 예를 들어, 종이 만들기 시간에 손으로 하는 걸 못하니 구경만 하겠다던 한 참가자 분은, 슬쩍 손을 담그게 하자 끝날 때까지 집중하셨죠. RC카 체험하는 날은 무척 뜨거웠는데, 너무 더우니 쉬었다 하시라고 아무리 권해도 다들 멈추질 않으셨고요. 이 정도면 충분한 힐링이 되지 않았을까요?

원주에서 잘 놀고 있습니다: 그림한권의 36.5도시, ‘도루깨와 쟁이의 딴짓 프로젝트’

그리고 더 중요한 건, 제 일상에 활력이 생겼다는 거예요. 지금까지 항상 혼자 작업을 하거나 누군가를 가르치지만 했지, 이렇게 함께 노는 건 처음이었거든요. 마음 가는 대로, ‘필’ 받는 대로, 그냥 놀면 되는 거구나. 이 프로젝트가 하나의 경험이 되어서, 앞으로 제 남은 시간을 걸어가는 색깔이 전과 조금 달라지지 않을까 생각도 들었어요.

앞으로 이 공간에서 하고 싶은 일이 많습니다. 36.5도시 프로젝트를 한 것처럼 사람들이 여러 딴짓을 겪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운영에 대한 고민은 앞으로 조금 더 해야겠지만, 가능하면 무료로 오픈하고 자잘한 체험도 할 수 있게끔 하려고 해요. 제가 작업하다 남은 재료만으로도 충분히 체험이 가능하거든요.

2022년 10월 기준, 그림한권은 일주일에 하루, 화요일마다 열려 있어요. 여러분의 딴짓에 기꺼이 가이드가 되어드릴 수 있으니, 불편해하지도 미안해하지도 말고 이 공간에 편히 드나들어 주신다면 좋겠습니다.

그림한권
→ 조은 @greemhankwon

인터뷰 진행 및 글
→ 새보미야 @saebomiy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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