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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비상사태의 문화(2022.02.21. / 원주투데이)

  • 작성자 관리자
  • 등록일 2022.04.12
  • 조회수 659
기후비상사태의 문화

최근 유럽 12개국 극장이 탄소발자국을 최소화하는 작품을 실험하고 있다. 원주문화도시 사업에서만이라도 기후비상사태 매뉴얼을 만들어 주길…

기후비상사태의 문화(2022.02.21. / 원주투데이)

더이상 비행기로 여행하지 않기로 한 예술가들이 있다. 공연예술가의 특성상 전 세계를 대상으로 공연을 다니는 경우가 많은데 비행기를 이용하지 않고도 가능한 공연만 하겠다는 것이다. 얼핏 무모한 선언 같지만, 기후비상사태에 개인의 탄소발자국을 최대한 줄여보자는 결정일 것이다.

탄소발자국은 개인이나 단체가 직간접적으로 발생시키는 온실 기체의 총량을 말한다. 우리가 일상생활을 하면서 탄소를 얼마나 배출하는지 한눈에 볼 수 있도록 표시한 것이다. 우리가 일어나서 씻고, 밥 먹고, 출근하고, 퇴근하고, TV를 보는 일련의 과정들 속에서 이산화탄소가 얼마나 많이 배출되고 있는지 간단하게 알 수 있다.

최근 안무가 제롬 벨과 연출가 케이티 미첼은 기후변화에 대응하면서 탄소발자국을 최소화하는 작품을 실험하고 있다. 유럽 내 12개국의 극장이 관심을 갖고 제작에 참여하고 있다. 이 작품은 내용뿐 아니라 제작과정과 유통, 공연에 이르기까지 전 과정에서 지속가능성과 관련된 모든 부분들을 실험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공연 중 사용하는 전기는 배우들에 의해 자가발전하기도 한다. 공연은 12개 국가에서 지역 배우들에 의해 공연된다. 즉 완성된 공연을 이동시키는 게 아니고 과정과 대본만 이동시켜 현지 배우들에 의해 수용되고 창작되는 과정을 다시 밟는 것이다. 그들은 지속적인 만남을 통해 지금까지의 관행을 살펴보고 경험과 리서치, 활동가들과의 만남을 통해 탄소발자국을 줄이는 창작작업을 고수하였다.

오래 전 일이지만 환경 관련 전시회의 오프닝을 성대하게 하면서 일회용 컵과 접시 등을 사용하는 모습을 본 적이 있다. 플라스틱으로 만든 다량의 축하화환과 축하리본은 며칠 후 모두 쓰레기가 됐을 것이다. 그럴만한 전후 사정이야 모르지 않겠지만 혹시 전시 오프닝 행사를 하는 게 관행은 아니었는지, 그렇다면 다른 방법은 없었을지 고민하게 된다.

세계 유수의 축제들이 이미 친환경 가이드를 제공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전한 바 있다. 국가적 차원의 고민도 중요하지만, 우리 삶의 일상성을 고려한다면 지역, 마을에서의 지속가능한 생태환경을 구체적으로 점검할 필요가 있다. 특히 문화도시를 지향하는 원주는 더더욱 문화적 삶, 문화예술 생태의 지속가능성에 관심가져야 한다.

이전에 비해 공공영역 문화사업들의 총량은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다. 공식 통계는 없지만 규모면에서는 민간의 문화활동보다 공공영역에서의 문화활동 또는 사업들이 최소 20배가량 많을 것으로 예측한다. 그 만큼 기후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과 책임에 대한 구체적인 연구가 필요하다.

한 번의 전시행사를 위해 제작했다가 버려지는 구조물들은 없는지, 재생 가능한 재료의 사용을 원칙으로 하는지, 민간문화활동으로 환원이 가능한지, 지속가능성을 위한 민간영역과의 협업은 가능한지 연구해야 한다. 또한, 공연장은 단순히 작품과 관객 사이 매개자의 역할을 넘어 그 공연이 제작과 유통과정에서 과도한 탄소발자국을 남기는 건 아닌지, 공연 후 재생 불가능한 폐기물들을 배출하는 건 아닌지, 마일리지를 줄여 지역 내에서 제작이 가능한 지 의미 있는 점검을 시작해야 한다.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매뉴얼을 개발해 기획단계에서부터 탄소배출량에 대한 지속적인 점검을 하는 것도 가능하다. 매년 연말연초에 전국의 공공문화기관에서 보내오는 인쇄물이 넘쳐 날 정도다. 특별한 내용이 담긴 자료들도 아니어서 열어보기만 한 후 모두 폐기되는 것들이다.

국가차원에서 2050년까지 탄소중립을 선언했지만 지방정부가 이를 어느 정도 실행하고 있는 지는 모르겠다. 문화예술현장에서 먼저 실천해 주기를 바란다. 조금 불편한 문화예술활동이 오히려 지속가능한 문화활동이 될 것이다.

제롬 벨과 케이티 미첼의 실험에 유럽 12개국 공연장들이 공동제작에 나선 건 공연장의 역할이 무엇이어야 하는지 선언하는 중요한 기점이 되고 있다. 원주문화도시가 문화사업에서만이라도 기후비상사태 매뉴얼을 만들어 주기를 바란다.

문화는 절대 한 번 쓰고 버려져서는 안 된다.

원영오 연출가/극단노뜰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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